애린 이종희

산문

그 섬에 갇히어...2

노을 깊은 저물녘 삼겹살 파티를 하면 참 좋겠다며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데 연일 내리는 비에 생겨난 폭포수가 건장한 바위 골을 타고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 왔다.

그 쯤 어디엔가 점박이 나리꽃무리가 피어있던 기억이 떠올라 절벽을 훑어보는데 바위틈에 구절초와 낯익은 풀꽃들이 각양각색의 모양새를 하고 때마침 찾아온 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잃어버린 해안에 대한 집착으로 안타까워했던 나는 잃고 얻음의 평범한 진리를 이렇게 빨리 목격했으면서 또 다른 집착에 사로잡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화면에 채워진 풍경들이 늘어날수록 나는 심장리와 안도를 잇는 다리를 반대하는 고향주민에 대한 이해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오지가 될 수 없을 때 매료된 풍경을 망각하는 이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날 밤,밀려든 피곤함에 일찍 잠이든 나는 온 섬을 뒤 흔드는 요란한 소음에 깨어나 창가로 갔었다. 빈다는 게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잘 알면서도 어쩐지 쓸쓸해 보였던 텅 빈 방파제위에 어느새 적잖은 젊은이들이 화려한 불꽃들을 앞세우고 한바탕 축제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방파제를 가득체운 그들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유년에 묻어둔 한가위 보름달과 추억과 전설을 기억하는 이들 이였으리라.

잠은 설쳤지만 간만에 안긴 고향 품에서 피로를 걷어낸 나와 동생은 집안 어른들이 이미 성묘를 끝낸 줄 알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을 걸으며 아버지 산소로 향했다.

잡초만이 무성한 도랑논과 밭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으리만치 나태해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낭구(동백나무) 밑은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했다.

봄이 오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그 동백나무 아치터널을 지나 마당널쪽으로 소풍을 갔었다. 주변에는 최씨네 무덤가가 있었고, 금잔디가 넓고도 푹신하게 깔려 동네 사람들이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장구를 무척이나 잘 다루며 육자배기 구성지게 부르던 늙은 아낙도 있었고, 잊고 온 젓가락을 대신했던 나뭇가지에 배인 쓴 맛 때문에 그날 내 미각은 엉망이 되기도 했었던 기억이 이리도 긴 세월 강을 건너고도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어디 그뿐이랴 한번 떨어지면 성한 몸이 되지 못한다는 아름드리 짜밤 나무가 있었고, 삐비와 쑥과 달래 취나물과 고사리, 산딸기가 지천에 널러있지 않았던가.

동백나무 아치터널을 지나면 바닷가로 가는 솔밭 길도 있었고, 복사꽃 곱게 피던 언덕배기도 있었고, 돌배꽃 하얗게 흩날리던 내 친구 민옥이 집 새랍과 어린 날, 동동주 한잔의 추억이 깃든 뱅그르르한 숲이 있었다.

고향은 있는 그대로 방치해서도 안돼 겠지만, 편리한데로 가꾸고 다듬는다 해도 많은 사람들의 득과 실과 그리움을 헤아릴 줄 아는 미덕도 따랐으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는 언제나 아름다운 귀향을 꿈꾸고 있으므로.

귀향의 꿈을 잃지 않게 변함없이 우리를 반겨주신 고향 어른과 젊은이들께 태풍의 그늘을 어서 빨리 걷어내길 바라며 오늘도 축복의 날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