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갇히어...3
며칠 전에 벌초를 했으나 아버지 무덤 위 억새풀은 유난히 숱이 많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살아생전 우리 아부지 머리숱이 많이 부족하더니 그게 한이 되셨나 보다.” 며 맞장구를 친 동생과 한참동안 웃어버렸다. 우리 아버지는 대머리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항상 옆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훤해진 이마를 덮곤 하셨다.
일년에 한번은 고향을 찾았어도 외진 무덤까지 오르려면 보통 담력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산밭들을 오래 묵히다 보니 산길이나 들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게 당연했다.
어렴풋한 형체로 남은 옛길을 따라 오르는데 혹시 젖은 풀 속에서 뱀이라도 꿈틀댈까봐 여간 무섭고 두려운 게 아니었다.
어릴 적 동생들은 아버지를 만나러 매일 이 길을 올랐다고 했다. 그 때 동생들이 심어둔 측백나무가 얼마나 의연하게 잘 자라 있던지. 그 모습을 본 동생은 무척이나 감동스러워 했고 대견해 했었다.
모진 폭풍과 수 없이 싸우며 날마다 떠날 꿈을 꾸셨던 아버지.
그래서 떠났지만 떠나보니 내 편한자리는 그 바다였다고...
결국 아버지는 바람 데로 오랜 세월 그 바다만을 지켜보고 계신 것이다.
제법 굵직한 빗줄기가 섬과 우리를 가두며 퍼 부어댔다.
기약 없는 이별을 아버지께 전해 드리고 어스름한 숲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먼발치에 처연히 웃고 있는 들꽃무리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를 쉽게 뜰 수가 없었다. 존재를 잊어도 묵묵히 피고 지는 들꽃, 언제쯤이면 내 안의 무게는 그들처럼 훨훨 자유를 찾을까...
태풍전야 바다는 늘 그랬듯이 비단을 깔아놓은 듯 단잠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깊은 밤까지 요란했던 천둥소리를 들으며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또 날은 밝았고, 긴박한 엔진 소리를 품으며 꼬리에 꼬리를 문 동네 배들은 태풍 피난처인 안도 두몽안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남은 한 척의 배가 왠지 위태로워 보이는 선착장에 바람의 전주는 점점 웅장했고, 그 진동에 온 바다는 살기 가득한 짐승의 심장처럼 포악스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