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눈 뜬 장님의 외출

매일 80여분동안 학교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는 딸아이가 며칠 전에 내년도 한국학교 유치원생 모집을 알리는 가정통신문을 들고 들어왔답니다.

그래서 어제는 유치원 가등록에 꼭 필요하다는 제외국민등록 사본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 총영사관 주소만 들고 택시를 탔지요. 여적 유치원 입학을 미루고 있던 다섯 살 박이 아들이 있거든요.

일찍이 딸아이와 한국학교주소만 달랑 들고 택시 기사도 처음 와 봤다는 남사이공 거리를 헤매며 낯선 하늘아래 첫 외출을 혹독하게 치렀던 경험이 있고, 그 후 몇 번의 용감한 외출로 인해 간은 커졌다지만, 이 나라 말을 모르니 외출을 하면 여전히 전 눈 뜬 장님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살다보니 집단을 이룬 한국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택시가 집 앞 골목에 항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허름한 프라이드 택시에 다가가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자 기사는 알았다는 듯 하차해 차문을 공손히 열어주었지요. 이럴 땐 꼭 귀빈이라도 된 듯 괜히 으쓱 해 지지만 주제를 영 잊은 건 아니에요.

다행히 한국영사관은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영사관 경비가 요구한 여권을 내밀자 경비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빙긋 웃더라고요. 그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 갈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긴 하데요.

11시까지인 오전근무 마감시간이 20분이나 지났지만, 영사관 직원의 도움으로 제외국민 등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요.

이틀 후에나 뗄 수 있다는 제외국민 등록 필증 사본을 예약을 하고, 그 때까지 영사관 문 앞에 타고 왔던 택시가 대기해 준 덕에 편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택시요금은 이 나라 평균 물가의 열배랍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택시요금과는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러니 부유층이나 외국사람 상대로 영업을 할 수 밖에요.

딸아이 담임선생님은 두 분입니다.

한분은 2년 만기인 한국 여선생님, 또 한분은 미국인 총각 선생님이에요.

매일 과목별 한국어와 영어로 수업을 받으며 혼란스러워 하던 딸아이는 단원이 끝날 때 마다 두개의 언어로 시험을 치루며 많이 힘들어했지요. 그래도 어려서 그런지 빠르게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며 기특한 생각이 들 때가 더러 있습니다.

한동안 떠나온 학교 급우들이 손수 꾸며준 편지와 그림을 보며 그리움에 젖었고, 울먹거리며 자주 돌아가고 싶다 말할 땐 어미 가슴이 많이 아프더라고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여러 국제학교로 분산되어 있던 한국어린이들이 요즘 강도 높은 영어수업 방식이 한국학교에 도입되고부터 속속 전학해 오는 바람에 지금 초,중,고 학생수가 400명을 훨씬 넘겼데요.

내일이면 딸아이는 학교친구들과 베트남 공장 자동화 전산화를 둘러보고 자연생태계를 알아 보기위한 견학을 떠난답니다.

얼마전 베트남 박물관 견학을 같이 다녀온 담임선생님께서 여기는 사회주의국가라서 미국인 다음으로 비싼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자주 견학을 떠나고 부족한 운동을 대신해 일주일에 두 번씩 마라톤을 하느라 얼굴은 많이 까매져 있지만, 점점 밝아져가는 딸아이를 보며 이제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번 주 토요일엔 저도 견학을 떠납니다.

이 먼 곳 까지 우리나라 해군 함정 3척이 온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어요.

하얀 제복을 입은 해군들의 표정도 우리나라 가을하늘만큼 환해져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