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문득

파스텔 고운 치장을 한 지붕위에

오늘도 어김없이 파란 하늘이 열렸습니다.

잠시 후면 몽실몽실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여백하나 남기지 않고 누워버릴 테지요.

그러면 천둥의 먹구름은 빠르게 몰려들어

장대비를 퍼붓고는 이내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우기랍니다.

안개비도 보슬비도 좀처럼 내리지 않는 이 땅에선

비가 온다고 해서 우울하거나

감상에 젖어들지 않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오히려 그 트임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 택시를 타고 시장엘 다녀오다가

먼지 이는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밥을 먹던

한 아낙을 보았어요.

왜 하필 그 자리서 밥을 먹어야 하는지

이제는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먼지도 소음도 공해도 별로 의식하지 않아도

마냥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이 나라 사람들을

벌써 닮아 버렸는지

외출 중에 장대비를 만나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비가 오면 맞아버리면 되는 것이고

비에 젖으면 씻어버리면 그만 이더군요.

어느덧 서울 떠난 지

스물여덟 밤이나 지나버렸습니다.

떠나는 날

우리가족과 함께했던 지난날이

참 오래 기억될 것 같다며

섧게 울어버린 이웃집 아낙을

외려 위로하고 떠나왔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슈퍼마켓을 하느라

늘 바빴거든요.

오늘은 문득,

그 아낙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