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비오는 날 오후.

오랜만에 비가 왔습니다.

하루에 두 세 번도 오는 비가

이틀 동안 안 내리면

오랜만이 되더군요.

11층이라 하지만

우리나라 아파트 13층쯤 되는 고층,

오늘처럼 나 홀로 집에서

비오기 직전 바람을 만나면

참 무섭습니다.

어느덧

한국을 떠난 지 일년이 다 되어갑니다.

떠날 때

이곳 인터넷 사정을 미리 알아채고는

손수 7백 여 곡의 노래를 다운 받아

카피해 주던 친구가

일년 내내 고마웠습니다.

그 음악이 없었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웠을까…

나의 취미이자 특기인 청승떨기도

이 음악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겠지요.

음악을 들으며 하늘을 보았고,

구름과 노을과 바다를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내 이웃과 친구와 부모형제,

나에게 소중했던 그 많은 인연들을 그리워 했고

보고 싶었습니다.

어느것 하나 내려 놓을 수 없기에

어쩌면 이렇듯 똑 같은 자리에서

내 속내를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일년의 비자가 끝나고

며칠 전 일년 거주증명서를 받았습니다.

일년 내내 이 나라에 있어도 된다는 허가증이지만

또 일년이 가면 또 일년을….또 일년을…

내게 특별한 날이 오지 않으면 그렇게

이 가을과 봄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의 방학은 그 계절엔

없으니까요.

그러나 일순간의 슬픔과 허전함은

이 촉촉한 바람에 잠재우고 맙니다.

언제나 저는 여기에 있겠습니다.

지난날 추억이 있고,

그 시절 그리움이 있고,

그 옛날 사랑이 머물던 내 가슴속,

그 많은 이야기를 풀어드리겠습니다.

삶은

맑은 세상에서 혼탁한 세상으로 열린 게 아니라

혼탁한 세상에서 맑은 세상으로 열려있다고 봅니다.

그 문을 찾을 수 있는 건

우리의 마음이고, 우리의 열정이겠지요.

우리가 어느 마을, 어느 바람과 이야기 했는지

좀더 많은 세월이 흐르면 알겠지요.

모든 것은 노을처럼 순간이고 말겠지만

너무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을 겁니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구가 있으니…

이 글과 함께 듣던 노래노래 듣기
♪ Chris Spheeris — Juli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