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간

치간(측간)
역마살에 얼룩 졌던 유년기는 그야말로 혼돈의 나날이었다.
그 때의 난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고, 좀처럼 입을 열 줄 몰랐다.
궁금한 것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도 아니였다.
동네 전체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할아버지 집은 남쪽, 대나무 숲을 향해있었다. 어찌 보면 답답해 보이긴 해도 새랍만 나가면 온 동네 배들의 움직 임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만큼 시야가 트여 있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고구마 두지가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고, 구석진 공간을 좋아했던 난 할머니 몰래 그 속에서 놀다가 잠든 적도 있었다.
아랫 채엔 치간이 이었는데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까만털 요즘 말로 흑돼지가 그 안에서 무럭무럭 크고 있었다. 그래서 돼지는 모두 치간에 사는 줄로 만 알았다.
어린 아이들 새총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가 놓여 있었고, 천장엔 손잡이가 치간의 위태로움을 말해 주고 있었다. 큰 일이라도 볼라치면 그야말로 곡예사가 되여야 했던 그 시절,어린 나 에게 도깨비이야기 만큼 두려움을 주었던 곳이기도 했다.
우리가족이 그 치간을 쓰게 되었을 무렵엔 돼지는 살지 않았지만 아버지께서는 어린 자식들을 위해 그 곳을 개조하기로 하셨다.
손수 겹겹이 쌓인 초가지붕을 뜯어내고 낮은 양철 지붕을 덮고 넓 직 한 판자를 바닥에 깔았다. 더 이상 곡예사가 될 필요는 없었지만 두려움마저 가져가지는 못했다.
유난히 잘 싸웠던 나와 동생이지만 자매의 우애를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 치간,그리운 그 시절 생각을 할 때면 내 입가는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2002.
* 이 사진은 베트남 떠나기 직전 추석 때 찍은 풍경입니다.
참 많은 사연과 기억을 담고 있는 저 빈터 담장에 피어있던 타래꽃마저도 그리운 시간입니다.
♪ leepilwo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