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스치는 자리마다...

지난여름이었지요.

일 년에 한번밖에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갈증으로

목말라 했을 즈음

아이들 방학과 동시에 고향으로 내려갔답니다.

고향 산길도 걸어보고

내 어릴 적 서툴게 해봤던 개헤엄도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꿈을 꾸면서요.

정오를 시점으로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해무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머리맡에 앉아 있었지요.

그리고 내 어릴 적 무수히 보았던 금빛 노을은

사색의 기쁨을 안겨주며

매일 피고 지기를 거듭했습니다.

어스름을 타고

나로도 불빛들이 밤바다에 수놓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를 닮은 밤하늘엔 별무리들의 세상이었지요.

세상 어떤 유혹도 그것을 보았다면

더 이상 날개를 펼 수 없을 거란 착각을 했습니다.

습 찬 갯내음을 맡으며

한적한 선창가를 거닐던 여유로움은

내가 꿈꾸어 온 최상의 행복의 조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 들이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어느덧 일주일이 되어 갔습니다.

늘 고향의 모습을 그리며 살았건만

어떻게 된 일인지 가슴에는 또 다른 그리움이

밀려들기 시작했지요.

하는 수 없이 일주일 만에 고향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향하고 말았습니다.

먼 길이라 이른 새벽부터 서둘렀건만

한 밤 중에서야 서울 땅을 밟게 되었지요.

서울은 풍요의 상징처럼

수많은 차량의 불빛들이 어둠을 가르며

강변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지요.

그리고 거대한 한강 물줄기를 따라

은하수처럼 펼쳐진 서울 야경은

내 그리움의 표상처럼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습니다.

마음은 항상 소녀를 꿈꾸어도

몸은 어느덧 중년을 치닫고 있습니다.

그 길 따라 동행하는 것은 내 살던 곳과

내 인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합니다.

내 나이를 거슬러 올라갈 순 없지만

스쳐온 날들을 추억하며 그리워 할 수 있는 여유는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지요.

아이의 겨울 방학과 동시에 서울을 떠나

아랫녘으로 내려 온 지

어느덧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병풍처럼 둘러싸인 뒷산 마루가 정겹고

한파가 온 나라를 기습중인 요 며칠 사이에도

언덕 아래 올망졸망 누워있는 작은 텃밭 시금치는

여전히 제 옷 빛깔을 잃지 않고 있네요.

며칠 후면 이 순간도

내 그리움의 대상이 되겠지요.

2003년 1월 7일

부산에서...

글,사진/애린

장소 여수, 오동도

http://aerinlee.cafe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