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하늘이 구름이

보고 싶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서야 우리형제는 다시 남녘으로 향했다. 엄마 살아계셨으면 여러 번 만났을 남매지만 어찌된 일인지 날이 갈수록 자욱한 안개 속을 거닐 듯 몽롱한 의식 속을 헤매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밤늦게 도착한 부산의 하늘에는 별무리가 둥둥 떠가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떠가는 것은 별이 아니라 구름이었다. 그 옛날 동생들은 위독하신 아버지 소식을 할머니께 알리기 위해 큰댁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이제 막 기우는 달님 곁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을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어딜 가든 유난히 반짝이는 별을 보면 그곳에서 아부지가 지켜보고 계신다고 생각할 거라고 다짐했었다는 얘길 그 많은 세월이 흘러 엄마가 위독하실 무렵에 털어놓았다.

그 시절 동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나는 참 오랫동안 간직했었다.

어쩌면 나는 좋은 시절에가리어 망각할지도 모를 내 그림자를 껴안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구지 그러지 않아도 내 의식의 멍에는 튼튼한데 말이다.

동생은 어떤 날은 마당가에 채송화가 활짝 피었다고 했고, 어느 초여름엔 언니랑 만든 꽃밭에 수국이 활짝 피었다고 했다. 그러다 어떤 날에는 곤로에 된장국이 넘치고 있으니 그만 써야겠다고 했다. 아아-그때 나는 얼마나 고향이 그립고 얼마나 돌아가고 싶었던가...지금 생각해도 뜨거워진 눈시울을 피할 수 없다.

부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화장대 거울을 통해 나를 본 동생은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안 닮을 수 있냐고 웃었다. 닮은 것이라곤 목소리 밖에 없다며 만약 그거라도 닮지 않았다면 나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고 동생은 말했다.

정말 동생과 나는 닮은 구석이라곤 목소리밖에 없다. 그러나 목소리를 통해 닮은 구석은 너무도 많았다. 어린 날 만화영화가 끝나자 오랜 무덤 같은 초가집을 빠져나온 우리는 노을빛 물든 오솔길에서 가을 꽃다발을 만든 기억이 있다. 그날 우리 자매 가슴에는 그 어떤 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예민한 감성이 싹텄으리라.

여수로 떠나기 전 언니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한사코 데려간 홍법사에서 동생은 ‘절에 처음 오는 사람은 일곱 번 절을 하는 거라며’ 자기가 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나는 어떨 결에 일곱 번의 절을 했다. 그리고 일어나 동생을 보니 그때 까지도 사뭇 진지한 몸짓으로 동생은 연신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동생의 기도를 잠시 스치는 바람이 들었다면 가슴은 또 얼마나 아렸을까.

서다가다를 반복한 남해 고속도로를 내달려 마침내 여수에 있는 엄마의 무덤가에 도착했다.

49제 후 처음 본 엄마의 무덤은 산허리를 휘감은 작은 길을 따라 불다가 지친 마른 바람이 간혹 스칠 뿐, 너무도 쓸쓸한 햇볕이 그동안 어미 잃은 설움을 남몰래 이겨내던 자식들을 어루만져주었다.

이윽고 우리는 무덤가에 연산홍 철쭉을 나란히 심고는 엄마께 다시 작별을 고했다. 산을 내려오면서 동생은 너무 일찍 간다며 엄마가 뭐라고 할 것 같다며 자꾸만 돌아보았다.

자식사랑이 남달라 아직도 정을 떼지 못하는 우리엄마...어쩌면 그것이 힘든 시간 우리의 버팀목인지도 모른다고 파란 하늘이 뭉게구름이 서로를 흔들며 스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