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운동장에서 건대앞까지
아주 오래전 일이였어요.
비가 부슬부슬 내려
잠시만 걷다가 지하철을 타겠다는 처음 생각과 달리
빗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자꾸만 걷고 싶었던 나는
그저 우산 하나에 빗물을 친구하며
도란도란 마음의 소리를 거리에 내 보내며
걷고 또 걸었지요.
신당동 중앙시장을 스처 지날때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올 것 같아
한참을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으로 담았습니다.
왕십리 역도 지나치고
어느덧 한양대 정문앞을 스치면서
한쌍의 아름다운 연인이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저만치 앞서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었고
아름다운 연인보다 더 다정스럽게
캠퍼스 나무들이 비에젖은 내 운동화를 바라보며
촉촉히 젖은 제 몸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간절히 그 땅에 한번쯤 서성이고 싶은
내 젊음의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몰려와
스스로 절망하며 연인의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나지막히 내 속내를 속삭이고 있었지요.
그때까지 지치지 않았던 내 발은
한양대 역을 지나면서
보도블럭 사이에 고인 흙물속으로
첨벙첨벙 뛰어 들고 있었죠.
한양대역을 지나고 다리를 따라 걷다가
나를 기다리다 떠나는 전철을 보게 되었죠.
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치고 스치는 사이
내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동대문 운동장역으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그 전철이 허리를 굽으며 사라저간 후
강가에 모여앉아 한평생 살아가는 잡초들의 속삭임을
멀리서 모아듣고
저 보다 낳을 내 생에 대한 꿈을 빗물에 심고는
한결 포근하게 다가오는 저 발아래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 보았습니다.
다리를 건너 뚝섬역 앞에서 만난
노란 비옷을 걸처입은 꼬마 아이와 엄마가
다정히 눈맞춤을 하며 웃고 있을때
내게도 있었을 엄마와의 추억을
아무리 찾고 또 찾아봐도
가슴에 허탈한 기억만 고여둔체
다 젖어버린 운동화를 위로하며 또 걷기 시작하였지요.
거리는 벌써 어스름이 내려와
차량들도 불빛을 보내며 내 길을 밝혀 주었고
난 마지막 힘을 다 쏟아내며
좀 더 빠르게 걷기 시작하였죠.
성수역에 다달았을 때 서야
내가 걸어왔던 길이
매일 나도 모르게 전철을 타고 오갔던 길이였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저만치 들어난 건대앞 플랫폼을 힘없이 지켜 보았죠.
건대역앞에서
매일 수레에 꽃을 가득 싣고 꽃을 팔던 아저씨가
그날따라 다정하게 느껴저 나도 모르게 꽃수레에 다가가
안개꽃과 장미 한다발을 사들고
걸어온 내 길에 대한 졸업을 축하하며
비에젖은 꽃다발을 가슴에 안았지요.
집에 돌아온 내 곁에
알수 없는 서글픔이 따라와
몇일을 아무도 모르는 우울함을 홀로 삭혔지만
날이 갈수록 비와 친구했던 그날이 수채화처럼 그려저
가슴에 파고드는 젊음의 푸르름이 아름다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그날의 추억을 또 다시 보여봅니다.
내 초라한 거리에는
슬프지 않았던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금 내 가슴엔
기쁘지 않은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이시간 그때의 내 모습 빗물에 흘러 보내려는 것은
그때의 모습 또한 너무도 그리워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