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어설픈 산행

해마다 가을이면 산으로 오르고 싶은 마음은 왜일까? 그렇다고 해서 산

을 올랐던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다.다만 정상에서 시야가 확트인 세상

을 보았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때의 감동을 지울수 없다는 것이

다.

가을이면 끈적임 없는 습도 덕인지 내가 받아 들이는 공기는 산뜻함을 넘

어 거울 같이 맑고 투명한 개울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계절이 쓸

쓸하게 다가오는 걸까.

상계동 수락산 아래에 큰 댁이 있다. 행정 구역상 서울 특별시인데 내가

받아들이는 그 곳은 뒷산이 병풍을 쳐 주는 여느 한적한 시골 마을과 흡

사하다.

연두 빛 봄과 나무 특유의 향이 동네를 감싸는 여름, 쓸쓸함을 상승시켜

주는 가을,앙상한 가지위에 눈꽃들이 만개한 겨울까지 어느 계절 한 자락

도 빼 놓을 수 없는 여유로움이 그곳엔 있다.

한가위 둥그런 달님이 산 속에서 태어나 창문 가에 걸려 그런 나의 마음

을 뚫어지라 처다 보며 그렇게 부러우면 뒷산에 한번 올라 보라 속삭이

기를 몇 해 였는지 모른다.

추석 뒷날 아이들과 늦은 아침을 먹고 나자 형님이 내 속내를 알아차렸다는 듯

먼저 산행을 계획했고, 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당장이라도 실행

에 옮기고 싶었다. 가까이 산을 두고도 내 생각과 다르게 큰 댁 가족들은

이런 저런 핑계로 뒷 산은 벽에 걸려서 사시사철 동영상을 보여 주는 것

으로 만족하며 살아 온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산 입구에 들어서 서울 땅에 발 붙이지 못한 들풀들

을 바라보며 아카시아 숲길에 들어섰다.

문득, 하얀 아카시아꽃이 눈 꽃처럼 흩날리고, 우린 그 꽃 길을 걸어가는

환각에 빠지기도 했다. 때 늦은 매미가 어느 잎 새에 숨어서 노래를 하는

지 내 고막에 박혀 한참 동안 빠져 나가지 못 했다.

가파른 오솔길을 어느 정도 오르자 여러 갈래의 갈림길들이 샛강처럼 골

이 나 산행을 처음 한 사람에겐 혼동을 주기에 안성 맞춤 이였다. 등산로

군데군데에는 산에 어울리지 않게 과꽃과 코스모스가 함빡 웃음 을 토해

내고 있었고, 내 어렸을 적 따 먹었던 머루가 이 산 어디에선가 숨어 있다

가 내게 들켜 줄 것 같아 두리번 거리기도 했다.

어느 나무에 매달렸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느닷없이 도토리 한 알이

내 머리에 굴밤을 주며 발 아래로 나가 떨어졌다.모든 것이 좋았다. 가을

하늘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푸르름이 좋았고,등산하기에 부족함없는

날씨 또한 좋았다.

아들 녀석은 듬직한 사촌 형 손을 꼭 붙잡고 뒤따라 오는 누나에게 연신

조심하라 이르고, 누나는 질세라 "너나 조심해! 쪼그만 한 게 누나를 뭘

로 알고 그래!"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한쪽 발이 뒤로 쭈 욱 미끄러진

다. 사는게 별건가 싶었다. 이런 소박함이 가저다준 행복이 마냥 소중하

게 느껴졌다.

잘 정돈된 등산로 나무 계단을 몇 군데 더 오르자 아들 녀석은 다리가 아

프다며 주저 앉으려 했다. 쉴 곳을 찾던중 투박스런 바위벽이 눈 안에 들

어 왔다. 누군가가 짧은 호수를 끼워 붙여놓은 바위에서 약수가 언제부

터 인지 모를 세월을 매달고 떨어지고 있었고, 그 옆에 빨간 바가지 한쌍

이 정답게 누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맛본 약수로 목을 축이며 주변을 훑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혀 외로워 보이지 않는 운동 기구가 있었고, 소나무

가 그늘을 엮어 준 넓직 한 벤취와 저 건너에 삐죽 돋아난 바위산의 멋들

어진 모습도 보인다.

나는 어딜 가나 눈 앞에 보이는 풍경에 쉽게 매혹 되기 보다는 그 풍경을

비디오를 찍듯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으로 끝낸다.그 후로 오랫동안 조금

씩 꺼내 야금야금 감상에 빠지는 버릇 때문에 수 없이 산으로 오르고 싶

은 충동 또한 억제할 수 없다.

아무리 갈망해도 현실은 마냥 산으로 올라 보라 쉽게 허락지 않는다. 아

니,맘대로 오르려는 내 욕심 한 켠에 그래 주지 못한 내 게으름의 변명이

라 말 해야 옳을 것이다.

정상으로 오르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 했지만, 아들 녀석의 지친 모 습을

보고도 내 욕심만 내세울 수 없는 노릇이였다. 이 만큼 오르는 것으로 만

족하고 내려 갈려는데, 운동기구 옆에 돌계단이 슬그머니 눈에 들어 왔

다. 돌 계단을 몇칸 올라 넓적한 바위에 오르자 솔 바람 무리가 우루루 몰

려와 내 얼굴을 때리고는 흩어저 버렸다. 순간 꼭 정상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는 듯 시야가 확 들어왔다.

성냥갑처럼 우뚝선 아파트 숲이 도미노 게임을 할려고 누군가가 일부러

세워 둔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바위 아래 낭떠러지가 내 눈에 박히자 내

발바닥이 근질근질 거리며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지려 했다.

"오~~으으으으~~"

내가 산행을 시작 하려면 애들이 빨리 커 줘야 하는데, 이녀석들은 언제

클려고 편식을 즐기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