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백일홍 편지(포토에세이)

수천수만의 물 알갱이들이 두 눈을 가린 나라에서

당신의 촉수가 초록 담장으로 이끌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느 잡풀에 부대끼며 시들어가고 있을까요

풋내 나는 서정을 풀어내고도 곧게 세운 목대를

한 번쯤은 꺾어내며 두 눈을 부릅뜨고 싶었을 텐데

당신은 날개의 방향을 틀어 한 번도 나를 외면한 적 없었지요

누구나 애벌레같은 시절은 있는 거라고

그래서 투명하게 흐르는 잎맥이 빛나는 거라고

늘 어깨를 다독이며 나풀거리던  당신,

아낌없이 풀어주신 당신의 햇살이 내 마음을 채울 때면

누런 떡잎이 푸르게 대공을 올리는 줄 모르고

나는 더 많은 빗방울을 갈망하며 목말라했습니다

숨 가쁘게 파닥이며 숱한 고개를 날아온 당신이

호젓한 노을가에 앉아 선 굵은 문양을 펼치고부터

온 들녘은 향기로운 파스텔 색채로 넘실거리는데

아직도 등을 보이지 않는 마른 통증들이

문득문득 생기를 찾아 진물이 흐르는 것은

석 달 열흘 시들지 않을 분홍 송이로

환하게 벙글고 싶기 때문인가 봅니다

위드포엠WithPoem님의 스토리글story.kakao.com 금오도 금오열도gum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