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고향으로 가는 길(4)

비에 위축된 어구들이 나뒹구는 길을 걸어 고향집 대문을 열었다. 때마침 바람은 인기척을 비집고 화단의 나뭇가지들을 들추느라 부산하다.

고향집 나무들이 모조리 베어진 후로 한동안 우리 남매들의 마음도 몽땅 잘려나간 느낌이었다. 지루한 장마와 태풍을 견디며 끝내 달콤한 노을빛으로 완성되던 단감나무의 상실은, 동네분들에게도 너무 갑작스럽고 황망한 일이었다.

나무가 무성하여 음지로 변한 빈집의 기운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미친다는, 순전히 작은 아버지 노파심이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는데, 나무를 바라보며 뿌듯해하시던 엄마를 기억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았다. 더욱이 작은아버지의 예측과 달리 완전한 양지로 변한 고향집 마당은 환삼덩굴 차지가 되었고, 어느 해 여름은 여러 계단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현관문까지 빼곡하게 터를 잡는 바람에 오랜만에 도착한 우리를 아연케 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심어진 과일나무는 당당하게 가지를 뻗더니 작년엔 제법 당도 높은 배를 잉태해 주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아버지 산소에 오르는 산길에 접어들 시간이지만, 지금 우리는 집 안팎을 쓸고 닦는 대청소에 몰입한다.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이 없었다면 여전히 샘물의  알량한 수위에 절망하며 최소의 물방울로 최대의 효과를 얻느라 비지땀을 보태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전에 고향집은 더욱 퇴화되었을 것이고, 그런 집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그저 눈으로 훑고 가는 고향의 풍경 속에 매몰되지 않았을까.

새삼 이 옥수 같은 수돗물을 위해 아름다운 고향 집을 잃어야 했던 그니의 마음이 겹친다. 이미 밀림으로 번식했을 정든 길과 지척에서 지켜보던 우람한  문바위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했던 푸른 섬들과  부모형제 손때 묻은 문고리와 돌담에 피어있던 돌이끼까지, 얼마나 오랜 날 덜어내지 못한 그리움에 몸살을 앓으며 뒤척였을까...*

금이 간 시멘트 바닥을 뚫고 싹튼 백일홍이 하도 기특해서 마당 청소 담당인 오빠에게 부탁을 했건만, 마당은 다시 환해졌고 뽑힌 초록들은 보슬비 틈에서도 시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담장에 뿌리내린 세 살배기 해송과 꿀벌이 다녀간 배나무, 그리고 석류나무, 사과나무는 작년보다 훨씬 무성해졌고, 건너편 미니 화단 대추나무는 의젓하게 자리를 잡았다.

오래전 장례식을 치르고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섬으로 내려온 우리 사 남매를 기다린 것은, 작은방 한 귀퉁이에 가지런히 서 있던 조선간장 네 병이었다. 엄마는 그때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이승의 남은 진을 모조리 짜내며 간장을 따랐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못다 한 육자배기를 나는 알지 못한 채 세월을 먹었고, 나의 육자배기는 온전히 이승의 몫으로 흩어지기를 갈망하며 마음길을 무던히 찾아 헤맸다.* 그런데도 엄마가 남긴 간장병을 아직도 비우지 못하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어디서 들어왔는지 박제된 벌레들이 구석마다 수두룩하다. 이런 조그마한 것들에게 무사하겠다며 막냇동생은 고향집에 올 때마다 텐트를 치고 자는데, 밤새 텐트 안에 갇힌 모기와 피를 나눈 형제가 되기도 하고, 아기 지내 한 마리와 사이좋은 숙면을 취하기도 하더니, 결국 우리가 쳐둔 모기장을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고향집 거실은 텐트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냉장고에 보관되었던 식기들을 헹구고 구석구석의 먼지들을 닦고 나니 어느새 저녁 준비할 시간이다. 때마침 마당이 왁자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