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갈바람통

바람은 그저 왔다가 흩어질 뿐 (갈바람통)

                                             이종희

가야 할 길을 잃어서가 아니다.

가고 싶은 길이 없어서가 아니다.

흔들리며 파랑과 마주하는 건

젖은 내가 젖은 나를 견뎌내는 일,

무심에 베인 다정이 있다는 걸 알았고

깃털에 가라앉은 바람(望)이 있다는 걸 알았다.

때로는 미지의 항로를 꺾으며

벼랑이 무너지는 절망에 흔들렸고

때로는 소금꽃 환한 고독을 어쩌지 못해

등 뒤로 빠져나가는 바람 길을 열어두었다.

한 생이 서쪽 바다를 안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결마다 파고든 거친 숨을 재우며

주홍빛 사랑이 걸어오기 때문이다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고 싶은

단 하나의 절개가 서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