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소화 아씨 만나는 날

낡고 오래된 연립주택이지만, 그곳을 스치는 날이면 탄식이 머물렀다.

너무 바쁜 날 문득 고개 들어 노을 진 하늘을 올려다보는 느낌이랄까...

몇 해 전 태풍에 무참히 꺾이던 날들을 지우고 능소화의 만개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어느 빈 날을 골라 그곳에 가 보게 되었다.

차를 타고 스치듯 지날 때와 사뭇 다른 눈부심이 있었다.

온몸에 착착 감기는 습한 고온이 몸의 습기를 모조리 끌어내도, 앵글 속으로 빨려들어오는 소화아씨의 미모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고보니, 낯선 어르신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예쁜가요?"

"네... 너무 예뻐요..."

"에이, 여기 사는 사람들은 베버리자고 해요"

"세상에, 이렇게 예쁜걸요?"

"자꾸 꽃이 떨어져 지저분하다고요. 치우는 사람도 없고..."

"에구... 그래도 베지는 마세요, 능소화가 너무 흔하게 피어있지만

이렇게 예쁜 꽃은 쉽게 만날 수 없어요"

그렇게 한참 동안 대화를 이어가던 어르신은 불현듯 어디선가 빗자루를 들고 오시더니 바닥에 수북이 쌓인 소화 아씨를 거두셨다.

그 후 3년 만에 소화아씨와 재회를 했다.

예전보다는 많이 수척해진 느낌이었지만 미모는 여전하다.

바닥에 떨어진 소화아씨를 주워 담장에 올리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내가 알던 질문이 화들짝 고개를 돌리게 한다.

"예쁜가요?"

능소화 연정

진종일 꽃비 내린 외진 담장에

해묵은 그리움이 고개를 듭니다

주인 잃은 빈집의 공허가 뒹굴기 전에

꽃송이로 뚜벅뚜벅 걸어오신다더니

스치는 계절만이 꽃등을 켠 가지에는

핏빛 낭자한 설움이 그렁그렁합니다

염천의 하늘가에 피어나는 저녁놀은

내일을 믿으며 황홀한 꿈에 젖습니다

붉은 소인이 찍힌 엽서라도 부쳐 준다면

생기 잃은 가지에 푸른 물이 오를 텐데

넝쿨져 오른 기다림에 무심한 바람은

주홍빛 송이로 후드득후드득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