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포토에세이

우리 서로 길은 달라도

다시는 돌아가지 말자고 돌아선 자리에

다시 돌아가 매달리는 내가 있고

다시는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했던 가지에

다시 매달려 흔들리는 내가 있다

언제나 변치 않을 것 같던 사랑은

서로가 모르는 사이 바래져 갔고

끊임없이 가지를 늘리던 그리움은

저무는 햇살로 점점 야위어 갔다

구만리 길을 두고 가볍게 나부끼는 잎새들처럼

무심한 깃털 하나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

품는다면 잎새가 남긴 연둣빛 사연처럼

투명한 웃음으로 착해질 수 있을까

흔들리고 흔들려 우듬지까지 올라가 보아도

내수피를 비집고 싹튼 공허만이 빛날 뿐,

나는 오갈 데 없는 무형의 나무로 우뚝 서 있었다

그때였을까

바람이 지구 한 바퀴 쉼 없이 돌고 돌아 도착한 것이,

한숨 푹 자고 나면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바람이 겨우 가슴을 열어 보이던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