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

제트기를 이긴 날

일곱 살 때,

아홉 살 오빠랑 할머니 산밭에서

어른들이 캔 고구마를 들고

소나무 산길과 비탈진 언덕을 스쳐

반달 모양의 돌담을 휘어 돌았습니다

그리고 새랍에 막 도착했을 때,

지상의 모든 쇠덩이들이 부딪쳐

서로를 새까맣게 갉아먹는 소리가

할머니집 마당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그 소란에 꾹꾹 눌린 목소리를

겨우 밖으로 꺼낸 오빠는

우리가 옮겨 만든 고구마 동산 뒤

평상 밑으로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육이오 날려나 봐!"

"오빠, 육이오가 뭔데?"

바닥에 납작 엎드린 오빠가

공산당을 가지런히 꺼내놓고

단단하게 뭉쳐놓은 동굴 울음을

한꺼번에 터트렸습니다

나는 왜 공산당이 오빠 넋을

천길 낭떠러지로 떠미는 줄 모르면서

오빠처럼 손가락으로 눈과 귀를 막고

고음으로 쏟아지는 울음을 보탰습니다

한꺼번에 터져나온 우리의 공포에 놀란 걸까요

아니면, 육이오가 바다를 건너지 못한 걸까요

점점 묽어진 소리는 파리해진 하늘을 두고

우리가 알지 못한 곳에서 뚝, 그쳤습니다

나는 온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

나른한 포만감에 취해

한동안 공중에 둥둥 떠 있었습니다


*새랍: 대문/금오열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