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겨울 호숫가 바람은 매웠어도

안에서 빈둥거리기엔

베란다 밖 하늘이 너무 눈부시다.

바깥 날씨 예보를 보니 한 낮이 영하 1도다.

어제 김포 추위가 생각나 모자랑 목도리를 챙겼다.

딱히 갈 곳이 생각나지 않을 땐

옆지기랑 서로 미루다가 결국 내가 이긴다.

“아, 맞다! 반월호수 블루베리!”

내 뜬금없는 호들갑에 옆지기는 검색을 멈추고

나는 명함꽂이에서 2023년 고향 선,후배님들과

수락산 산행 후 들렀던 식당 명함을 꺼낸다.

선,후배님들과 늦은 점심을 먹고

어스름이 내릴 무렵 도착해서

아쉬움을 남기던 호숫가 하트는 여전하다.

한 바퀴 돌고 식당으로 가기로 하고

시계방향으로 걷는다.

태양이 쏘아대는 힘은 눈으로는 절대적이지만

피부에 와닿는 바람은 얼얼하다.

그 느낌은 호수 표면이 거칠게 요동칠수록 절정이어서

영하 1도가 성난 바람을 만나면 어떻게 막강해지는지

처음 걸어왔던 자리와 표가 나게 비교된다.

매일 새벽이면 올라오는 고향 뱃길 소식을 읽을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아침에 열리던 뱃길이 왜 오후만 되면 닫히는지,

왜 역포가는 뱃길은 그렇게 자주 끊기는지.

예전에 배를 타고 통학할 때를 돌이켜보면

풍랑 때문에 객선은 어쩌다 한번

서고지에서 밤을 보냈지,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뱃길이 끊기진 않았다.

이런저런 불만과 불신이 해운 회사로 쏟아지던 어느 날

기상악화의 운항통제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서

결정된 일이라는 공지가 떴다.

이 좁은 호수도 저렇게 높은 파도를 이끌어 내는데

신강수도의 바람은 오죽할까

기상이변이 끌고 온 바람은

예전과 많이 다르긴 하겠다는

약간의 의구심을 떨구지만

맞은편에서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칼바람은 무섭다.

그래서 호숫가 예쁜 문구들은 힘내라고 줄지어 응원한다.

산 아래에 놓인 그늘진 데크로드를 걷다가

지난 습설에 무너진 침엽수를 보고

수면위를 떠다니던 낙엽을 끌어 안은 수빙 구간을 스친다.

테크로드를 빠져나와 둑길에 오르자

바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 고요하다.

어떤 고통이 진통제로 가라앉은 느낌처럼 살 것 같았다.

바람이 따라오지 못한

햇살 내려앉은 길을 걷다가

품바노랫가락이 흘러나온 곳으로 오른다.

사심 없이 흔드는 자유의 몸집에 걸음을 멈춘다.

어떤 흥이 몸 안에 자리하길래

저 가벼운 옷을 입고도 저리도 함박이가 될 수 있을까.

품바공연이 없었으면 하마터면 놓칠뻔한 거리에서

호떡 가게의  여닫이 문을 연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빼곡하다

한참만에 호떡을 받아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도 만원이다. 그래도 기다려

고등어와 좋아하지는 않지만

평소에 집에서 먹을 수 없는 청국장을 시켰다.

고향분들을 떠올리며 먹는 기분이 아늑하다.

여전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봄이 도착하면 친구들이랑 다시 오자며 길을 나선다.

눅눅한 습기가 달라붙던 어느 초여름

산행을 마치고 걸었던 갈치호수 둑길이 보인다

저 건너편 수국꽃은 얼마나 환했는지....

지붕 달린 좁은 평상에 앉아 머물던

향기 언니 주말농장이 생각난다.

참 오랜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오늘은 또 어느 자락에서 기억해 낼까

그날도 부디 햇살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