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마당 멍석은 지금도

해무가 망산 자락에 걸려 꼼짝 못 하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는 말씀하십니다.
“아이고, 오늘도 머리가 다 벗어지겠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할머니는 어김없이 산밭으로 오르면서 저에게 신신당부하십니다.
“다섯 번 저어라!”
새랍 옆 돌담 그림자가 선에 닿으면 보리를 젓는 거라고 할머니는 부지깽이로 다섯 개의 줄을 규칙적으로 그어 놓습니다. 햇볕이 너무 강해서 금방 다 마를 것 같은데도 할머니는 멍석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보리를 다섯 번이나 저으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햇볕에 말라 가는 보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은 너무 따분한 일이라서, 금방 고개가 앞으로 기울었다가 뒤로 젖히기를 반복합니다. 하필 작은방 마루는 매끄럽고 윤이 나는, 농도 짙은 시멘트 바닥이어서 꾸벅꾸벅 졸기엔 너무 안성맞춤입니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 신발도 안 신고 새랍으로 달려가 보면, 할머니가 부지깽이로 그어 놓은 선으로 돌담 그림자가 도착하려면 당당 멀었습니다.
사르륵사르륵, 내 작은 손이 휘젓기엔 멍석 위 보리는 너무 많고, 또 잘 저어지지도 않습니다. 한두 번 빼먹어도 할머니는 잘 모를 게 뻔하다고 생각하면서 세 번만 젓습니다. 하지만 산밭에서 돌아오신 할머니는 제가 몇 번 저었는지 귀신같이 알아차려 목소리가 커지고, 저는 하는 수 없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입니다.
마당 위에 보리가 사라질 때에도 멍석은 마당 한쪽에 누워 있다가 마을 사람들이 오거나 친척들이 방문하면 요긴한 자리가 되어 주곤 했습니다. 한 번은 그늘진 멍석 한쪽 귀퉁이에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꿀꺽꿀꺽 무언가 마시는 소리가 고소하게 들렸습니다. 눈을 감고도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말린 보리로 미숫가루를 만들어 오겠다며 방앗간에 가신 할머니가 돌아오신 겁니다.
어렴풋하게 저를 깨우라는 소리가 들리고, 좀 더 자게 하라는 말씀이 들려도 저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숫가루 냄새 때문에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소리가 너무 커서 들킬까 봐 당황하며 눈을 더 찔끔 감습니다. 그냥 일어나면 될 것을, 어린 저에게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 짙은 브라운 멍석이었습니다.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나 어떤 부당한 일이 있어도 제대로 일러바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마을과 집안의 공기 흐름으로 스스로 터득합니다. 이런 저를 두고 저보다 두 살이나 많은 오빠는 가끔 화가 나서 제 엉덩이를 걷어차고 밖으로 뛰어나가 밤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고 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른들도 우리 오빠도 참 바보 같습니다. 어린 날에는 잘 모르고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제 눈에 알쏭달쏭 박힌 사람들 마음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하지만 그리움으로 직조된 할머니 집 황토 마당 멍석이 저를 자주 그곳으로 이끌어 다정한 품을 내줍니다. 제 설운 기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문득문득 일깨워 주려고 그러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