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시집- 너에게 가는 길 3화

양자역학

빛이 오래 머문 이유

그날 우리는

일정에도 표시되지 않은 좌표에서

서로의 미세한 떨림으로 잠시 닿았다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현실로 굳어지는 순간

앞서간 사람들은 그것을

우연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만남은

비어 있던 틈이 아니라

오래도록 고르게 진동해 온

확률의 결이었음을

우리는 알지 못한 채

점점 스며들었다

너를 만나기 전

나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파동으로

하루를 통과하고 있었고

너 역시 여러 방향의 빛을 품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친 찰나

흩어져 있던 마음이 말없이 접히고

사라지던 무한의 어딘가에서

하나의 필연이 교차하는

빛으로 드러났다

손을 잡지 않아도

네 마음이 미세하게 흔들리면

내 안의 하루는

같은 파장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움은 소유가 아니며

지켜봄 또한

가장 깊은 접촉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서히 배워갔다

각자의 궤도를 존중한 채

서로를 압박하지 않는 거리에서

빛은 오히려 더 오래 머물렀다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측정되지 않은 신뢰로 남아

그리움으로 조심스럽게 바뀌었고

나는 너를 향해 존재의 이유를

마지막 남은 빛으로 꺼냈다

따뜻한 얽힘이 숨처럼 이어져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만질 수 없는 점 하나,

지금의 아릿한 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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