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시집- 너에게 가는 길 4화

단절된 주파수의 사계

벽

꽃들이 피어나는 길목에서도

외부 입력을 꺼둔 너는

귀를 닫기 위해 설계된 장치

상처를 거르는 필터라 믿었던 벽은

모든 소리를 튕겨내는 방음판이었고

스스로 켠 차단막 속에서

건네진 문장들은 잡음으로 분류되어 지워졌다

습도가 높아진 날마다

내부는 자주 과열되어 붉은 경고등을 켰다

누군가 다가와 접속을 시도할 때마다

포맷이 맞지 않는다는 신호만 깜빡였다

신호음이 하나둘 꺼져 나갈 때에도

너는 그것을 성능의 차이라 불렀다

바람이 차가워진 뒤에야

텅 빈 방의 정적을 감지했다

뒤늦게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고

페어링 버튼을 길게 눌렀지만

화면에 뜬 문장은 ‘연결할 수 없는 기기’

이미 삭제된 프로필 위로

오류 코드가 굳어 있었다

모든 접속이 끊긴 거실 구석

너는 더는 신호를 찾지 않는다

전파가 닿지 않는 모서리에

입을 닫은 화분 하나를 들여놓는다

말소리가 지워진 자리

몬스테라의 찢어진 잎이

소리 없이 물관을 열어젖힐 때

비로소 바닥의 흙냄새를 향해

낮은 주파수가 맞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