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시·시집- 너에게 가는 길 8화

하모니카

상처를 빚어 만든 호흡

은빛 빗장을 입술에 물면

닫혀 있던 통로의 매듭이

반음계의 계단을 타고 흔들린다

안으로 삼킨 모서리를

호흡으로 둥글게 밀어 허공에 놓으면

구멍마다 고여 있던 차가운 바람이

얇은 금속 판 위에서 파닥거린다

손바닥에 닿은 서늘한 쇠붙이가

체온을 머금고 미세하게 떨릴 때

엉겨 붙은 시간의 찌꺼기들이

소리의 결을 따라 천천히 밀려 나온다

꺼내지 못한 음들은 바람길에서 흩어지고

뱉지 못한 말들은 칸막이에 걸린 날개

내뱉는 숨은 옹이를 깎아 굴리는 둥근 바퀴

들이쉬는 숨은 닫힌 목구멍을 긁는 톱니

입술 끝 잘게 나뉜 틈새로

낮게 굽은 저음이 빠져나갈 때

비로소 팽팽한 떨림이

비어 있는 공기 속으로 번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