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종고지
어제 있던 무덤이 사라졌다.
어제 있던 무덤이 사라졌다.
밤새 비가 내렸다. 바람이 나무를 휘게 했고 파도는 비탈의 흙을 물고 내려갔다. 날이 밝자 사람들이 일종고지로 올라왔다.
“여그 있었는디.”
돌 몇 개가 비탈 아래 흩어져 있었다. 한 사람이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파도가 바위를 때리고 있었다.
심포 앞바다로 숲을 인 땅 한 자락이 뻗어 있다. 장지 쪽에서 보면 호랑이, 심포 쪽에서는 바다로 들어가는 거북이를 닮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곳을 일종고지라 불렀다.
짜밤이 떨어지면 아이들이 몰려왔다.
낙엽을 발끝으로 헤집다가 갈색 열매가 보이면 먼저 손부터 뻗었다.
“내가 먼저 봤어.”
“내가 먼저 주웠는디.”
주머니에 넣고 달아나는 아이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어금니로 깨무는 아이도 있었다.
딱.
껍질이 벌어지면 단단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비탈을 오르내리며 낙엽을 뒤졌다.
해 질 무렵이면 주머니가 불룩했다.
해방 뒤 벌목이 금지되면서 일종고지의 나무들은 오래 살아남았다.
아이들이 짜밤을 주우러 드나드는 동안 나무는 굵어졌고, 숲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많아졌다.
그 숲의 주인은 배를 가진 선주였다.
금오도와 나로도 사이에 정치망을 놓았다.
어느 날 그물을 끌어올리다 사람의 몸 하나가 걸려 나왔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주검이었다.
선주는 주검을 자기 땅인 일종고지에 묻었다.
숲 한쪽에 흙이 솟고 돌 몇 개가 놓였다.
아이들은 그 뒤에도 짜밤을 주우러 왔다.
한 아이가 무덤 쪽으로 발을 옮겼다.
“거기는 가지 마라.”
“왜?”
“가지 마라면 가지 마.”
아이는 돌 몇 개가 놓인 곳을 바라보았다.
그때 숲 안쪽에서 소리가 났다.
“여기 있다!”
아이는 돌아서 달려갔다.
딱.
무덤 위에 떨어진 짜밤 몇 알만 그대로 남았다.

일종고지에는 외지 낚시꾼들도 들어왔다.
낮이면 배를 대고 바위 끝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웠다.
어느 날 몇 사람이 낚시를 마치고 돌아가다 숲에서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 아름드리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날 밤 배 한 척이 다시 일종고지로 들어왔다.
낮에 낚시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번에는 낚싯대 대신 톱을 들고 있었다.
서걱, 서걱.
톱날이 굵은 몸통을 파고들었다.
한 사람이 밀면 한 사람이 당겼다.
톱밥이 발밑에 쌓였다.
나무가 기울었다.
쿵.
숲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가지를 쳐내고 줄기를 비탈 아래로 끌었다.
돌에 걸리면 달라붙어 밀고 당겼다.
바닷가까지 끌어내린 나무를 배에 실었다.
다시 숲으로 올라갔다.
또 나무가 쓰러졌다.
밤이 깊어지자 배는 잘라낸 나무를 싣고 일종고지를 빠져나갔다.
아침에 심포 사람들이 올라왔다.
숲이 달라져 있었다.
나무가 서 있던 자리로 하늘이 훤히 열렸다.
잘린 밑동 주변에는 톱밥과 부러진 가지가 흩어져 있었다.
“누가 이랬다냐.”
“낮에 왔던 그 사람들이라네.”
잘린 밑동 앞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비바람이 거센 어느 밤, 파도가 일종고지의 비탈까지 올라왔다.
아침이 되자 무덤이 사라져 있었다.
젖은 흙과 흩어진 돌 뿐이었다.
사람들이 흙을 헤쳤다.
다시 묻을 몸은 없었다.
처음 그 자리에 놓였던 돌도 차츰 흙에 묻혔다.
풀뿌리가 그 사이를 지나갔다.
잘려 나간 나무 자리에도 풀이 돋았다.
짜밤을 줍던 아이들도 더는 오지 않았다.
어느 가을날 짜밤 하나가 떨어졌다.
툭.
낙엽 위를 굴러 작은 돌 앞에서 멈췄다.
무덤이 있던 쪽이었다.

「일종고지」는 금오도 비렁길 5코스에 자리한 곶을 배경으로, 금오도 주민들의 구술로 전해지는 실제 이야기를 재구성한 짧은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