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갇히어...마지막회
마을회관은 어느새 발그스름한 촛불이 켜졌고 가끔 그 곳에서 튀어나온 손전등 불빛이 가두리 양식장에 꽂히곤 했다.
문을 열면 짠 물 입자들이 온 섬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고, 가끔 땅이 내려앉은 듯한 둔탁한 울림. 통신도 전기도 끈긴 암흑의 밤. 희미하게 깜박이던 등대만이 의식 잃은 바다위에 떠 있을 뿐, 그야말로 우리는 자연의 거대함에 내몰린 체 표류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날뛰던 비바람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선박 엔진 소리가 어둠을 타고 요란하게 부서졌다. 잠시 후에 마을 회관에서 돌아오신 외삼촌께서 앞집 배가 가두리 양식장을 들러보기 위해 그 바다에 떴다고 일러주셨고, 이대로 지나간다며 가두리양식장은 무사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내 우리는 술렁였고 그러는 사이 예고도 없이 더욱 막강해진 폭풍우가 그 바다와 섬을 덮어버렸다. 그러는데도 여전한 엔진소리에 놀라 창문을 열고는 아연질색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둘러 손전등을 비춰보니 예상대로 배는 거의 땅과 수평에 맞닿아 있었고 산산이 풀어 헤쳐진 상태로 간신히 이어져 있는 가두리 양식장은 요동치는 배 뒤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위에 연기처럼 흩날리던 바닷물, 나는 마치 공포영화 한 복판에 있는 듯 한 착각에 사로 잡혀 버렸다.
그 배가 왜 그 바다에 떠 있는지 이해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배는 점점 다가오는 가두리 양식장이 뭍으로 올라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연속 후진기어를 넣은 체 버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배와 선주가 가두리 양식장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무용지물인 선박을 고쳐주는 업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태풍이 방향을 바꾸며 돌아설 때 압력을 못 이겨 나가떨어진 고향집 뒷문 유리창으로 무수한 비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겹겹이 이블 호청을 두르고 임시방편으로 문짝을 다시 다는 사이 둔탁의 울림이 또 다시 느껴졌다. 태풍이 불 때 마다 무너질까 걱정이던 집 뒤 바위 언덕위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찢겨 떨어진 모양이라고 엄마께 전해 듣고는 조금 안심 할 수 있었지만,여전히 겁나고 무서운 건 사실 없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바람은 완연히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때까지도 앞집배가 불 밝히던 선착장에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사이로 달빛은 점점 환해져 갔다.
간밤 일들이 꿈인 듯 청명한 하늘에 순백의 뭉게구름은 참으로 오랜만의 자유처럼 평화롭기 그지없었고, 차라리 숨기고픈 주검의 잔해위에 가을 햇살은 무수히 쏟아져 은빛을 이루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다는 점점 평정을 되찾아 갔지만, 사람들은 엄청난 재난에 한동안 넋을 잃은 듯 했다.
녹섬앞에 묶여있던 양식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방파제가 제 안방인 냥 드러누운 가두리엔 물고기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바다에는 찢겨져 나간 양식장 스트로 폼 띠가 고기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섬 아낙들의 통곡소리는 온 바다를 적시어 버렸다.
많은 꿈과 희망이 떠내려간 바다는 여전히 푸른 꿈처럼 황홀하게 출렁거렸다. 참으로 가혹한 현실이었다.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고향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튼튼한 새 살이 돋아 고운 노을빛을 다시 안을 거라 믿으며 우리가 잊지 않는 한 언제고 우리를 반겨줄 거라 나는 오늘도 꿈꾸고 있다.
태풍이 지나가 버린 후
푸른 하늘과 바다와 섬이
너무도 조화로웠던 금오열도를 떠나오면서
언젠가 그 섬에 갇히어 내 좋은 사람들과
고향이야기를 하고 싶다.
유년의 꿈과 사랑과 그리움이 스며있는
내 고향의 아픈 상처들을 위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