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갇히어...완결
그 섬에 갇히어...1

오지마을, 낙도.
베트남으로 떠난다는 명분이 아니었으면 쉽게 나서지 못했을 그 섬으로 떠나기 며칠 전부터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상 예보에 귀를 기울였지만, 결국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만 요란할 뿐 보름달을 여간해선 보기가 힘들 다는 허탈한 소식만이 반복되고 있었다.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빗길을 헤치며 여섯 시간이나 달려 온 곳이 겨우 서울 톨게이트였으니 열 여덟 시간동안 귀성전쟁을 일찍이 치루었던 오빠의 얼굴엔 벌써부터 낙담의 표정이 역력했다.
남으로 내려 갈수록 설익은 보름달은 아까운 듯 제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후 세시에 출발하여 뒷날 새벽 세시에 돌산 군내리에 도착했으니 장장 열 두 시간동안 찻길을 달려온 셈이었다. 버스 전용 차로와 대,마 고속도로를 타며 생각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지만, 오랜 시간 지칠 법도 한데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태 적부터 들었던 파도소리, 그 비릿한 해풍을 맞으며 “그래, 이 맛에 고향을 찾는 거야!”여기저기서 연신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향 어른 분의 도움을 받아 달빛 어우러진 밤바다, 금오열도를 유유히 지나면서 문득 그 옛날 고향 친구들이 멋모르고 뱃놀이하던 기분이 이랬을까 싶어 살포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섬 마루에 걸려 우리를 반겨주던 달님과 별님. 아마 그들이 마중 나오지 않았으면 우리는 그 밤에 바다를 쉽게 건너지는 못했으리라.
한가위 전날에 차례를 지내는 우리 동네 풍습에 맞춰 해거름에 일찍 차례를 지내고, 이미 낚시에 빠져있는 남정네들을 뒤로하고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아낙들은 방파제 바람을 쐬고는 심장리를 향한 새로운 해변 길을 걸었다.
어렸을 적 방과 후 마루 한켠에 책가방을 부려놓고 부리나케 내달리던 우리의 아지트 바닷가는 이미 사라졌지만 새롭게 변신한 조망, 그 멀던 알마도가 서고지와 부도 방파제 사이에 참으로 의젓한 자태로 다가와 있지 않은가.
이쯤해서 나는 통나무집을 지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내 좋은 사람들에게 바로 앞바다에 떠 있는
푸른 녹섬을 지나 나로도를 향해 내달리던 노을을 끝까지 보여 줄 수 있으리라.그 노을이 지고 나면 밤배는 유성처럼 빛나 그들을 또 다시 황홀경에 빠뜨리고 말리라.

그 섬에 갇히어...2
노을 깊은 저물 녘 삼겹살 파티를 하면 참 좋겠다며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데 연일 내리는 비에 생겨난 폭포수가 건장한 바위 골을 타고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 왔다.
그 쯤 어디에선가 점박이 나리꽃무리가 피어있던 기억이 떠올라 절벽을 훑어보는데 바위틈에 구절초와 낯익은 풀꽃들이 각양각색의 모양새를 하고 때마침 찾아온 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잃어버린 해안에 대한 집착으로 안타까워했던 나는 잃고 얻음의 평범한 진리를 이렇게 빨리 목격했으면서 또 다른 집착에 사로잡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화면에 채워진 풍경들이 늘어날수록 나는 심장리와 안도를 잇는 다리를 반대하는 고향주민에 대한 이해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오지가 될 수 없을 때 매료된 풍경을 망각하는 이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날 밤,밀려든 피곤함에 일찍 잠이든 나는 온 섬을 뒤 흔드는 요란한 소음에 깨어나 창가로 갔었다. 빈다는 게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잘 알면서도 어쩐지 쓸쓸해 보였던 텅 빈 방파제 위에 어느새 적잖은 젊은이들이 화려한 불꽃들을 앞세우고 한바탕 축제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방파제를 가득 채운 그들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유년에 묻어둔 한가위 보름달과 추억과 전설을 기억하는 이들 이였으리라.
잠은 설쳤지만 간만에 안긴 고향 품에서 피로-*를 걷어낸 나와 동생은 집안 어른들이 이미 성묘를 끝낸 줄 알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을 걸으며 아버지 산소로 향했다.
잡초만이 무성한 다랑논과 밭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으리 만치 나태해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낭구(동백나무) 밑은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했다.
봄이 오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그 동백나무 아치터널을 지나 마당널쪽으로 소풍을 갔었다. 주변에는 최씨네 무덤가가 있었고, 금잔디가 넓고도 푹신하게 깔려 동네 사람들이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장구를 무척이나 잘 다루며 육자배기 구성지게 부르던 늙은 아낙도 있었고, 잊고 온 젓가락을 대신했던 나뭇가지에 배인 쓴 맛 때문에 그날 내 미각은 엉망이 되기도 했던 기억이 이리도 긴 세월 강을 건너고도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어디 그뿐이랴 한번 떨어지면 성한 몸이 되지 못한다는 아름드리 짜밤 나무가 있었고, 삐비와 쑥과 달래 취나물과 고사리, 산딸기가 지천에 널려있지 않았던가.

동백나무 아치터널을 지나면 바닷가로 가는 솔밭 길도 있었고, 복사꽃 곱게 피던 언덕배기도 있었고, 돌배 꽃 하얗게 흩날리던 내 친구 민옥이 집 새랍과 어린 날, 동동주 한잔의 추억이 깃든 뱅그르르한 숲이 있었다.
고향은 있는 그대로 방치해서도 안돼 겠지만, 편리한데로 가꾸고 다듬는다 해도 많은 사람들의 득과 실과 그리움을 헤아릴 줄 아는 미덕도 따랐으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는 언제나 아름다운 귀향을 꿈꾸고 있으므로.
그 섬에 갇히어...3
며칠 전에 벌초를 했으나 아버지 무덤 위 억새풀은 유난히 숱이 많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살아생전 우리 아부지 머리 숱이 많이 부족하더니 그게 한이 되셨나 보다.” 며 맞장구를 친 동생과 한참동안 웃어버렸다. 우리 아버지는 대머리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항상 옆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훤해진 이마를 덮곤 하셨다.
일년에 한번은 고향을 찾았어도 외진 무덤까지 오르려면 보통 담력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산밭들을 오래 묵히다 보니 산길이나 들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게 당연했다.

어렴풋한 형체로 남은 옛길을 따라 오르는데 혹시 젖은 풀 속에서 뱀이라도 꿈틀 댈 까봐 여간 무섭고 두려운 게 아니었다.
어릴 적 동생들은 아버지를 만나러 매일 이 길을 올랐다고 했다. 그 때 동생들이 심어둔 측백나무가 얼마나 의연하게 잘 자라 있던지. 그 모습을 본 동생은 무척이나 감동스러워 했고 대견해 했었다.
모진 폭풍과 수 없이 싸우며 날마다 떠날 꿈을 꾸셨던 아버지.
그래서 떠났지만 떠나보니 내 편한 자리는 그 바다였다고...
결국 아버지는 바람 데로 오랜 세월 그 바다만을 지켜보고 계신 것이다.
제법 굵직한 빗줄기가 섬과 우리를 가두며 퍼 부어댔다.
기약 없는 이별을 아버지께 전해 드리고 어스름한 숲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먼발치에 처연히 웃고 있는 들꽃무리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를 쉽게 뜰 수가 없었다. 존재를 잊어도 묵묵히 피고 지는 들꽃, 언제쯤이면 내 안의 무게는 그들처럼 훨훨 자유를 찾을까...

태풍전야 바다는 늘 그랬듯이 비단을 깔아놓은 듯 단잠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깊은 밤까지 요란했던 천둥소리를 들으며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또 날은 밝았고,
긴박한 엔진 소리를 품으며 꼬리에 꼬리를 문 동네 배들은 태풍 피난처인 안도 두몽안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남은 한 척의 배가 위태로워 보이는 선착장에 바람의 전주는 점점 웅장했고, 그 진동에 온 바다는 살기 가득한 짐승의 심장처럼 포악스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섬에 갇히어...4
마을회관은 어느새 발그스름한 촛불이 켜졌고 가끔 그 곳에서 튀어나온 손전등 불빛이 가두리 양식장에 꽂히곤 했다.
문을 열면 짠 물 입자들이 온 섬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고, 가끔 땅이 내려앉은 듯한 둔탁한 울림. 통신도 전기도 끈긴 암흑의 밤. 희미하게 깜박이던 등대만이 의식 잃은 바다 위에 떠 있을 뿐, 그야말로 우리는 자연의 거대함에 내몰린 체 표류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날뛰던 비바람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선박 엔진 소리가 어둠을 타고 요란하게 부서졌다. 잠시 후에 마을 회관에서 돌아오신 외삼촌께서 앞집 배가 가두리 양식장을 들러 보기 위해 그 바다에 떴다고 일러주셨고, 이대로 지나간다며 가두리양식장은 무사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내 우리는 술렁였고 그러는 사이 예고도 없이 더욱 막강해진 폭풍우가 그 바다와 섬을 덮어버렸다. 그러는데도 여전한 엔진소리에 놀라 창문을 열고는 아연실색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둘러 손전등을 비춰보니 예상대로 배는 거의 땅과 수평에 맞닿아 있었고 산산이 풀어 헤쳐진 상태로 간신히 이어져 있는 가두리 양식장은 요동치는 배 뒤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그 위에 연기처럼 흩날리던 바닷물, 나는 마치 공포영화 한 복판에 있는 듯 한 착각에 사로 잡혀 버렸다.

그 배가 왜 그 바다에 떠 있는지 이해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배는 점점 다가오는 가두리 양식장이 뭍으로 올라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연속 후진기어를 넣은 체 버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배와 선주가 가두리 양식장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무용지물인 선박을 고쳐주는 업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태풍이 방향을 바꾸며 돌아설 때 압력을 못 이겨 나가떨어진 고향 집 뒷문 유리창으로 무수한 비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겹겹이 이블 호청을 두르고 임시방편으로 문짝을 다시 다는 사이 둔탁한 울림이 또 다시 느껴졌다. 태풍이 불 때 마다 무너질까 걱정이던 집 뒤 바위 언덕 위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찢겨 떨어진 모양이라고 엄마께 전해 듣고는 조금 안심 할 수 있었지만,여전히 겁나고 무서운 건 사실 없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바람은 완연히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때까지도 앞집배가 불 밝히던 선착장에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사이로 달빛은 점점 환해져 갔다.
간밤 일들이 꿈인 듯 청명한 하늘에 순백의 뭉게구름은 참으로 오랜만의 자유처럼 평화롭기 그지없었고, 차라리 숨기고픈 주검의 잔해 위에 가을 햇살은 무수히 쏟아져 은빛을 이루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다는 점점 평정을 되찾아 갔지만, 사람들은 엄청난 재난에 한동안 넋을 잃은 듯 했다.
녹섬앞에 묶여있던 양식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방파제가 제 안방인 냥 드러누운 가두리엔 물고기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바다에는 찢겨져 나간 양식장 스트롬 폼 띠가 고기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섬 아낙들의 통곡소리는 온 바다를 적시어 버렸다.
많은 꿈과 희망이 떠내려간 바다는 여전히 푸른 꿈처럼 황홀하게 출렁거렸다. 참으로 가혹한 현실이었다.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고향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튼튼한 새 살이 돋아 고운 노을 빛을 다시 안을 거라 믿으며 우리가 잊지 않는 한 언제고 우리를 반겨줄 거라 나는 오늘도 꿈꾸고 있다.

태풍이 지나가 버린 후
푸른 하늘과 바다와 섬이
너무도 조화로웠던 금오열도를 떠나오면서
언젠가 그 섬에 갇히어 내 좋은 사람들과
고향이야기를 하고 싶다.
유년의 꿈과 사랑이 스며있는
내 고향의 상처들을 위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