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시집살이
며칠 전, 평소에 알고 지낸 분으로부터 점심 식사 초대를 받고 그 댁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날 점심시간에 팥을 푹 고아 우려낸 앙금으로 국물을 내고 손수 밀어 썰어낸 국수를 넣어 만든 팥 칼국수를 먹으며 그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댁에는 육 개월 비자를 받아 막내 아들네 다니러 오신 팔순 노모도 계셨다.
강원도 속초에서 오셨다는데 영락없는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 하셔서 여쭈어 보았더니 고향은 차밭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보성 이라 시며 할머니의 유년 시절과 처녀 시절, 그리고 매운 시집살이 까지 펼쳐 주셨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사시던 집 주위에는 대나무 밭이 있었는데, 할머니의 조부께서는 죽순이 올라 올 때면 촘촘히 나는 죽순을 동네 사람들에게 베어가게 하셨단다. 그래야만 나머지 죽순이 잘 자란단다. 가끔 마음에 드는 죽순이 있으면 어린 손녀와 함께 물동이를 얹어두곤 하셨는데, 얼마큼 지나 물동이를 들어보면 죽순은 미련스럽게 뭉트러진 머리를 하고는 희멀건 낯빛으로 커져 있었다 하셨다.
할머니 집 가까이에는 지서가 있었는데, 그 시절은 외정 때라 일본 순사가 살고 있었고, 마음씨 좋은 일본 순사 부부도 있었다며 일본 사람이라고 해서 다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셨다. 시집가기 전날에 순사 아내는 지서 내에 있는 목욕탕에다 물을 데워 주며 온 집안 식구가 목욕을 하게 해 주었고,그날 저녁은 김치만 가져오게 하고는 저녁밥까지 차려 주시더란다.
일본 말을 못하면 외출하기도 얼음장 같았던 시절이라 그 때 배워야 했던 일본 말로 지금도 웬만한 통역쯤은 자신 있다 시는 할머니는 일본 순사 아내는 우리말 배우기를 무척 어려워 했었다고 회상 하시며 그 들 부부의 가슴 아픈 사연까지 들려 주셨다.
아이를 낳지 못한 순사 아내는 아이를 몇 낳은 형제의 갓난아기를 어미의 젖도 안 물리고 얼마간의 사례를 하고 데려 왔는데. 이때, 아기에게는 거리거리 여기는 어디이고 어디쯤 왔다는 의식을 해야 한단다. 데리고 온 아이를 금지옥엽 귀하게 키웠지만, 그 아이는 무슨 이유인지 몇 해를 살지 못했고, 아무 말도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순사 아내는 산마루,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화장터에서 한 되도 안돼는 아기 골분을 안고 오더니 일본에 있는 절에 모셔 둔다며 일본으로 떠나시더란다.
할머니 나이 열여덟 살 때, 이웃 마을에 살고 있던 중매쟁이의 중매로 간 시집에는 중매쟁이도 모르는 네 살 박이 아들이 남편에게 있더란다. 낮에는 농사일을 돕고 밤에는 길쌈을 해야 하셨던 할머니는 시댁 어른들의 시집살이가 얼마나 매웠던지 그 이야기를 하실 적엔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 있었다.
시집온 지 석 달도 채우지 못하고 일본으로 떠나는 남편은 자신이 일본에 가 있는 동안만이라도 친정에 가 있으라 했지만, 시부모의 반대로 결국 시댁에 안주하게 되셨단다.
자주 시어른들로부터 이유 없는 구타를 당하기도 하셨는데, 어떤 날엔 잡힌 머리채가 뜯겨 나가 훤한 머릿속이 들어 나기도 하셨단다. 이런 일들이 잦다 보니 문중 어른들께 들키게 되었고, 급기야 문중 어른들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기도 하셨지만, 시댁 어른들은 그 때 뿐이시더란다. 결국 문중 어른들로부터 친정으로 돌려보내라는 명을 받고 할머니는 그 매운 시집살이에서 잠시 해방이 되었다고 하셨다.
장장 세 시간 동안 풀어내 주신 할머니의 옛 이야기는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어느 T V프로그램을 시청한 느낌이라 할까. 대하소설 같은 인생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생동감 있고 흥미진진하다.
어느 유명 작가님은 '지난 시간을 같이 공유한 인연들이 나이 먹을수록 각기 다른 과거를 풀어놓는 걸 보면 기억이라는 것도 결국은 각자의 상상력일 따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하셨다.
어제 일인 냥 너무나 투명한 할머니의 기억 중 아직도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답답하기 그지없는 시집살이 이야기는 한참 동안 내 마음을 안개 자욱한 거리로 내몰고 말았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해 온 시어머니들은 보상심리 에서인지 대대로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켜 왔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 거의 모든 아낙들이 시집살이를 해 왔고, 지금도 어느 지방에선 시금치의 ‘시’자만 들어도 그 음식을 안 먹는 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전해져 내 귓전에까지 다가왔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며느리는 자식에게 시집을 살고 있다. 그중 자식의 시집살이는 누구에게도 하소연도 못하니 이처럼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게 어디 있을까.
엄격한 감독과 간섭을 받아야 하는 시집살이 종류도 다양 하여 가끔 우리네 행복의 지수를 낮추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을 긴장 시키고 좀더 발전을 꿈꾸게 한다는 것을 이 시점에서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은 또 무슨 조화일까.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자신 만큼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시키는 존재도 없을 것 같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상처든 행복이든 마음먹기 따라서 그 무게가 다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