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퓨전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진 호치민시에 우기는 이미 끝난 듯 한데 오늘도 하늘은 너무 낮게 내려와 있다.
이러다 어제처럼 비가 내릴까봐 연신 창밖을 내다보는데 아무런 기척 없는 거리에 야자수 이파리만 신명나게 춤을 추고 있다.
하루 20명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어 간다는 호치민시에 먼저 온 주변 한국 아낙들은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해 시장을 보고 있었다. 가게 지출을 많이 차지 한다는 교통비를 아끼려는 마음에서 라지만 대단한 용기에 박수를 쳐줘야 할지 말지 구분도 못한 채 여전히 나는 택시를 타고 일주일 한 번씩 대형마트로 향한다.
오늘은 아들이랑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하나씩 사먹고 꼼 마트에 들어 서려니 크리스마스트리가 천장까지 커져 세상 축복을 다 품은 듯 오색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래, 벌써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구나.’ 이렇듯 나는 아직도 세월 감각을 되찾지 못한 채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친 듯 괜히 어색하여 보고 또 보고 아무리 쳐다봐도 도무지 느껴지지 분위기 이지만, 다가오는 성탄절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
우리나라 대형 마트 버금가는 마트들이 이 나라에도 있었다. 처음엔 자잘한 야채, 생선부터 가전제품까지 없는 것을 좀처럼 찾지 못할 만큼 풍요롭게 전시된 물건에 놀랐고, 어느 정도 그 분위기에 익숙해진 요즘에는 이 나라 사람들의 먹을거리에 많이 놀라고 있다. 하기야 지금 우리나라 강남, 어느 베트남 음식점에서는 이 나라 음식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던가.
그래서 그동안 우리나라 음식으로만 채우던 식탁위에 요즘은 퓨전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곳 생활, 내 운명의 지침을 겸허히 받아드리고 무엇보다도 즐겨야 하지 않을까 해서이다. 행복도 긍정에서만 오는 것이 아닐까.
2003.12.16
새끼 오리와의 하루
며칠 전, 새끼 오리를 집으로 데려와도 좋다는 사인을 받아간 딸아이가 자기의 몸집 보다 더 큰 오리 바구니를 들고 학교에서 돌아왔다.
그 오리는 미국인 선생님과 학교 주변에서 마라톤을 하다가 주운 새끼오리라 했다.
마라톤을 하다가 그 반 남자아이가 무심코 던진 돌멩이가 하필이면 새끼 오리 다리를 맞혀다며 미국인 선생님이 교실로 데려와 치료를 해 주셨단다.
그 후,낮에는 교실에서, 밤에는 그 반 아이들 집을 떠돌며 커온 새끼 오리는 아이들과 이미 정이 듬뿍 들어 있는 듯 했다.
사람을 알아보는지 인기척이 없으면 삑삑 울어대던 오리를 지켜보며 애들은 엄마가 된 듯 오리의 갖은 응석을 다 받아 주고 있었다.
하룻밤 자고 난 오늘 아침 딸애는 오리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다시는 데려 오지 않겠단다.
오리 바구니 속에 아침밥으로 새 쌀을 한 움큼 놓아주고 새로운 종이를 깔고는 또 다시 그 큰 바구니를 안고 학교 버스에 오르는 딸아이를 보면서
“니들도 그렇게 컸어. 엄마는 아직도 너네 들을 키우고 사는데 새끼 오리 하루 키우면서 그렇게 엄살이냐? 라고 놀려 주었다.
정성과 노력과 인내가 없이 어찌 세상의 새끼들을 다 키워낼까 싶다.
태어나자마자 새끼 오리마냥 삑삑 울어대던 딸아이를 데리고 친척집이나 여행지에서 치렀던 곤혹스런 순간들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유달리 울보였던 아이가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차츰 멎어진 울음보를 보고 ‘미꾸라지 용 됐다.’ 며 기특해 하시는 어른들 말씀에 내가 그렇게 많이 울었냐며 활짝 웃어보이던 아이는 얼마 전에 또 다시 이별을 겪고 말았다.
베트남에서 호텔을 경영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온 ‘영은’이가 엊그제 한달만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교과서에 나온 한국 사진만 봐도 설레던 딸아이는 자기보다 늦게 전학 온 새 친구에게 남다른 정을 주었던지 헤어진 날 일기를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전에 영은이에게 마지막 작별의 말을 해 주었다.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몰랐다. 한달만 있다가 간다고 미리 얘기나 해 주지... 버스가 출발하는데 영은 이도 많이 슬픈지 울고 있었다. 나도 한국에 가고 싶다.’
2003.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