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내가 결혼할 때는 꽃샘추위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음력 삼월이었다.

여수 거리에 동백꽃은 아직도 붉어있었고, 설익은 망울만 요란하던 장군도 벚꽃은 떨린 새색시 가슴마냥 시린 갯바람을 맞대고 얼마나 얼어붙고 있었던가.

결혼하는 새신랑, 신부가 아직도 추워 보이는 것은 그때의 날씨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얼마 전, 남편의 회사 직원의 청첩장을 받고 어스름이 짙게 내린 무렵 호텔 예식장으로 향했다.

그 날은 동남아경기대회(sea games)가 이 나라에서 한창 열리고 있던 때라 베트남 국기와 티셔츠, 붉은 머리띠를 파는 길거리 상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고, TV가 배치된 음식점마다 인파가 움집 해 있어 국제 행사의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우리나라 월드컵 때의 모습과 거의 흡사한 것으로 보아 우리의 응원 모습을 모방 해낸 건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나 한국의 SK텔레콤 측이 베트남 경제대학 응원단이 된 팬클럽을 지원해 '붉은 악마‘의 열풍을 재현해 낸 거였단다.

붉은 악마 응원단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비단 축구장 뿐 아니라 지난해 우리나라 월드컵 때처럼 거리 곳곳의 볼거리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택일을 잡듯 여기서도 길일(吉日)과 길시(吉時)를 택해 예식이 진행 되는데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아침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다.

나의 처음 기대와 달리 호텔 예식장엔 요란한 반짝임이 천장 곳곳에 치장되어 있었고, 목과 팔에 겹겹이 금도금 장신구를 한 신부는 신랑과 함께 호텔 입구에서 반갑게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뫁, 하이, 바(하나, 둘, 셋) 건배!”

잔치 분위기에 걸 맞는 하객들의 축배가 벌써부터 예식장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먼저, 예복을 따로 입지 않은 양가 부모님들을 무대위에 모셔두고 사회자가 진행하는 순서에 따라 결혼 행진곡과 함께 신랑 신부가 동시에 입장해 양가 부모님과 나란히 서서 결혼 서약 식을 하였다.

이 때는 행복하게 살라는 사회자의 당부만 있을 뿐, 우리나라처럼 특별히 초대에 응해 주신 주례자의 뜻 깊은 주례사도 없었다.

곧바로 신랑, 신부가 동시에 층층이 쌓인 와인 잔에 샴페인을 따르고 기념 촬영하는 것으로 일단 식은 끝나고 뒤이어 초대받은 가수들이 뒤풀이를 해 주었다. 하객들도 자진해 무대위에 올라 목청껏 자신의 노래를 불러 주어 유독 새신랑, 신부만이 아닌 그 안에 참석한 모두의 잔치가 되었다.

어느덧, 신랑, 신부는 세 번째 예복을 갈아입고 테이블 마다 돌며 하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있었고, 하객들은 축하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다.

식이 진행하면서 나오기 시작한 음식들은 고급스럽고 다양했으며 내가 먹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부유층에 해당된 거였고, 서민들의 결혼식은 이보다 질적, 양적으로 무척 협소하다 들었다.

고급 이벤트를 연출해 내는 우리나라 예식에 비하면 수준이 많이 뒤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주례사를 많이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딱딱한 예식 보다 신랑, 신부, 하객들이 모두 어울리는 잔치 분위기가 더 현실적으로 보였다.

이윽고, 잔치 분위기가 고조에 이르자 우리 일행은 호텔 출입구에서 하객들을 배웅하는 신랑, 신부와 기념 촬영을 마치고 그날의 특별한 시간을 마감했다.

시내 곳곳에 결혼하는 신랑, 신부의 모습이 그날 밤 참 많이도 눈에 띄었다. 운명의 그 밤은 길시였고, 그날은 길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운명적인 관문을 열고 당당히 어른이 되었으리라.

어른이라는 건,

그다지 높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결코 낮출 수 없는 깊이가 있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살아가면서 더욱 절감케 된다.

살다보면 자신보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수많은 갈등에서 벗어나는 길은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는데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무작정 참는 것도 능사가 아닐 테고, 그 때는 결혼식 때 주례자님께서 들려주셨던 뜻 깊은 조언이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 문은 자신 스스로 열지 못하면 열 수 없는 것을...그래서 이해의 경지에 오르신 어른들은 우리의 삶을 말하지 않아도 보인다 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