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먼 시간 사이로.

달랏 랑비앙 산 정상에서.
여간해서는 울릴 것 같지 않던 내 휴대폰 벨이 시공간의 정적을 깨던 날, 이어 들리는 저편의 목소리는 분명 귀에 익은데 단번에 나는 누군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 기억장치는 순식간에 풀리고 들뜬 내 반가움은 어느새 그녀에게로 갔나 보다.
“어머,,, 잘 있지요? 세상에 목소리는 그대로네…”
떠나올 때 이별의 아쉬움을 끝내 참지 못해 눈물을 보이고 말던 바로 그녀였다.
우리집 근처에서 규모가 꽤 크다 싶은 슈퍼를 하느라 늘 시간이 부족하던 그녀에게도 틈만 나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외로움 때문에 그 늦은 시간에도 그녀는 나를 찾아와 주곤 했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우리는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르고 거실 등을 밝혀두고도 얼마나 많은 아쉬움을 남겼나. 그래도 그녀의 남편은 기꺼이 넉넉한 마음을 들켜주었지.
그 해 봄, 연분홍 진달래꽃 사잇길을 걸으며 꽃 향기에 취하고 추억에 젖었었다. 지금도 그때 담아두었던 행주산성에 오르다 보면 야트막한 산 언덕 그 큰 나무 벚꽃이 함박 눈처럼 흩날릴 것만 같다.
아마 이맘 때였을 것이다. 잦은 안개가 그녀의 가게 앞 가로공원에 내려앉던 날 우리가 보았던 황홀경이. 안개 막이 설핏 사라질 때쯤 노랗게 물든 가로수를 보고있노라면 가슴에 남은 상처하나가 비에 젖은 듯 아리기도 했었지.
늘 대담한 척 위로하고 다독였지만 내 속내는 스스로 무너지고 야위어서 오히려 기대고 있는 사람은 나였음을 끝내 고백하질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아득한 시 공간을 두고 서로를 기억해주는 우리는 얼마나 귀하고 따사로운 인연인가.
보고싶다 한들 보고픔이 저만치 밀려가나요.
소리 내어 외쳐도 다시 삼켜지는 그리움을
아픔이라고만 말 할 수 없지요.
200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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