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꽃처럼 봄은 떠나고...
2년 전 윤중로 벚꽃 길을 걸으며 사람멀미를 한 적이 있었다.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라던 유행가 가사처럼 그때의 내 인연들은 또 다시 눈꽃 아치 터널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나 않았는지…그렇다면 나도 그 들도 따사로운 행복을 누렸던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그 좋은 봄날, 그 봄을 그리워하고 즐기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이곳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소개 된 어느 외국투자 업체를 시청하다가 나도 모르게 한 숨을 내쉰 적이 있었다.
화면 속 공장 안에 최신형 기계들이 어찌나 잘도 돌고 있는지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기에 있을 때의 그 희망이 바로 여기로 옮겨와 버린 것 같아서였다.
그 잘나가던 대부분의 제조업들이 우리나라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제는 가격의 경쟁력을 뛰어 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떠나온 이국에서는 그 동안 개발하고 습득한 기술을 고스란히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가격 경쟁만큼 중요한 것은 상품적 가치이고 그러다 보니 어느 것 하나 뒤떨어져서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기후와 환경,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자식을 키우는 것 또한 모험이라면 모험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여건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고급 인재들은 전혀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기술 심기에 성공한다.
처음 후진국에서 수입한 물건을 기억할 수 없으리만치 조화를 이루어 시장에 진열되어 있는 것으로 설명은 충분하다 할 수 있다.
그랬던 사람들 중에는 지난 노력과 열정이 무색하게도 떠나올 때보다 더욱 바닥으로 추락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다.
뜻이 같은 사람끼리 만나 이루고자 했던 꿈이 물거품이 되었노라고 눈시울을 붉히던 어느 아낙이 문득 생각난다.
그녀의 남편과 한국인 동료들은 회사가 정상가도에 들어가면 각자 지분을 나눠 갖기로 하고 최소한의 생활비만 받아가며 이 나라 근로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관리하며 밤 늦은 야근을 불사하며 최선을 다해 일했다고 했다.
그런데 최소한의 생활비로는 아이들 학비와 집세를 감당할 수 없어 한국에 있던 전셋집을 빼와 충당하며 살았단다.
그러는 동안 사장이란 분은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한국인 직원들에게 주던 한달 생활비만큼 들어가는 외국인학교에 자식을 보내면서 정작 한국인 직원에게 들어가는 그 알량한 생활비마저 미루기 일쑤였단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3년이라며 아무리 착하게 살고 싶어도 그 동안 그 사람을 믿으며 보낸 시간간과 최선을 다한 노고가 너무 아깝고 억울하다고 했다. 그래도 젊은 날의 실패로 여기고 다행히 모두 건강하니 새로 얻은 일터에서 다시 첫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 보겠노라고 했다.
상처가 생겨 곪아터져도 아프다는 표도 없이 현란한 꽃 속에 숨어서 지고 있는 꽃들처럼 속절없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그들에게 축복의 비가 뿌려지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우리나라를 떠나보니 우리나라사람들이 사는 곳은 너무나 좁았다. 자유롭다 하나 그 자유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는 구속이 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비단 여기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웃 나라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어느 주부의 경험에 의하면 어렵게 열었던 자신의 마음이 돌고 돌아서 결국 자신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더란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들었던 당부도 바로 그런 거였다.
어쩌면 나도 어느 거리의 단상에 올라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은 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때로 소멸의 아쉬움도 있을 터이고 그리고 우리가 또다시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것은 지는 꽃처럼 그 좋던 봄날이 잠시 떠나가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