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

그늘은 봄바람에 말리고...

아침에 출근을 하는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기위해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문득 친구들 생각나 문자 버튼을 눌렀다.

“간밤 엄청난 폭풍우에 무사하신가? 해피한 날 되기를...”

그랬더니 '놀토라 모든 알람 해지 해둬서 간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는 친구의 답장들이 즐비했고, 난 황당해서 피식 웃었다.

그랬다. 8시를 갓 넘긴 그 순간 내 문자는 단잠을 깨우는 알람이 되고 만 것이었다.

가끔 난 그렇게 사오정 시리즈에 나오면 딱 어울리는 황당녀라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그 사이 내가 탄 버스는 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은 집에서 늦게 출발한 덕에 내가 자주 애용하는 버스가 떠났고, 하는 수 없이 좌석버스를 타게 되었다. 좌석버스는 직선 길을 따라가기 때문에 출근길이 빨라지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먼 길을 돌아가는 일반 버스를 자주 애용한다. 그 시간은 하루 중 제일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이고, 다행히 서울 버스이기 때문에 항상 앉아서 갈 수 있는 행운도 함께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지난날 부천의 낯선 공원도 간밤 바람에 무사하지 못했다. 비에 젖은 채 처참해진 푸른 잎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스산한 바람이 계절을 잊게 하지만 어느새 무성해진 나무는 푸른 물 뚝뚝 떨어지는 숲 터널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세월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 때 가족이었던 그 사람이 없어도 사는 법에 익숙해지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그 세월이라는 지우개가 지난날 계절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그러나 다 지워도 지울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가 떠난 빈자리에 어느 날 문득 불쑥 솟을 그리움일 게다.

헝클어진 하늘이 게이고 있다.

상큼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 간밤 폭풍우에 기절했던 풀들이 다시 깨어나고 있나보다.

2008,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