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싸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빗줄기가 창을 덮치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 무거운 책가방이 얄미워 보여 평소, 현관에서
손을 흔들어 주던 난 대문 밖까지 나가서 딸아이가
긴 골목을 휘어 돌때까지 한참을 서 서
잠시 그 옛날 어린 아이가 되어
비오는 날 하교길을 악몽처럼 기억했다.
육지의 느긋한 날씨에 적응이 되어 있던 난
섬마을의 비바람 치던 등,하교길은 정말 악몽, 그것 이였다.
그날은 새벽부터 빗줄기가 곱게 다져진 황토흙 마당을 신나게
뛰어놀다가 지칠 때 쯤 좁게 페어진 골을 따라 새랍까지 나서서
남새밭으로 뚝뚝 떨어저 나가고 있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우산을 챙겨들고 처마에서 솥아져 내려
물거품을 이루다가 그 물거품을 터뜨리며 쏟아저 내린 비를 맞으며
산길을 오르기 시작 하였다.
등교 때만 해도 비는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진 않았다.오히려
산 길 소나무와 멀리 보이는 바다가 비의 장막 속에서 내게 뭐라
말해 줄 것 같은 다정함이 베여 있어 한없이 설레였다.
무사히 등교를 했고, 수업시간 내내 창밖 운동장에 놀고 있는
빗방울을 맞고 싶어 연신 내 눈길은 운동장에 고여 있었다.
수업을 지루하게 마치고, 드디어 내가 그 비를 우산에 뒤집어 쓰며
집으로 돌아가는 설레임이 저만치 앞장서 나가고,
등교길과 다르게 바람이 불긴 했지만, 상상이나 했을까...
어린 아이에게 다가온 그 엄청난 비바람을...
안도 이야포에는 구름다리가 있다.
저 먼 태평양에서 놀다가 오는 거센 바람을 구름다리가 여과를
해 주는 덕에 그곳을 무사히 빠저 나오는 바람의 우두머리가
마을에 와서는 잠시 한숨을 쉬다가 잠들어 버린다.
구름 다리 밖에서 숲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 만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을뿐,그 밖에서 요동을 치는 바람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두몽안과 학교앞은 아늑했다.
어느덧, 바람이 뛰어놀던, 매구를 치던, 단잠에 빠저 있는 구름다리
등줄기 아래길을 걸어 그 끝에 다다르고 모퉁이를 막 돌아서자
내 손에 쥐어진 우산이 확 뒤집어 지더니 뺑 뺑 돌기 시작했다 .
나도 그 우산을 따라 덩달아 돌다가
그 힘에 못이겨 우산을 그만 놓아주고 말았다.
바람 앞에 우산은 오히려 내게 위협스런 무기가 되었고,
거꾸로 옷을 입은체 내 손에서 빠저나간 우산은 땅바닥을 몇 번 치다가
바람의 힘을 못견더 저 두몽안으로 달음박질하고 있었다.
우산을 붙잡아 집에 데려갈 생각을 가로막는 태평양 소속의 바람은
나 마저 삼켜 버릴것 같은 거대한 입을 벌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호흡을 할 수 있는 순간적인 재치는 등을 돌린다는
그 것 하나뿐이였다.
내 뇌에서 시키는 데로 난 등을 돌렸다 .
등은 태평양으로 향하고 등을 돌려 천천히 뒷걸음질을 하며
산 길, 위태한 돌계단을 오르는데 비는 참으로 야속하게
내 얼굴과, 귀와 ,코, 눈을 때리고 있었다.
눈마저 감고 어떻게 산을 오르며
귀를 막는것 까진 할수 있는데, 코로 튕겨저 들어오는 비는
바람이 못다한 그들만의 약속한 내 호흡 정지인가...싶었다.
그렇다고 입으로만 숨을 쉬며 그 위태한 길을 걸어야만 하는가.
이윽고 바람이 쫓아올수 없는 아늑한 곳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눈을 뜰수가 있었다.
내 입술은 자꾸만 떨리고, 온 몸이 비에 젖어버린 아이들은
그때서야 말 문을 열었다.
난 처음 당한 이 엄청난 자연의 장난에 할말을 잃었다.
넋을 온통 뺏겨 버렸는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무사히 통과한 아이들은 그렇게 겁내 하지도 않았다.
왔던 길 보다 걸어야 할 길의 막연함에
그 잖아도 차갑게 식어버린 내 마음에 몸까지 덩달아 떨고 있었다.
간신히 그곳에서 빠저나온 우리는 산길을 아슬하게 걸었지만,
고맙게도 바람은 쫓아 오는 걸 포기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때서야 집으로 데려가지 못한 내 우산이 생각 났지만, 섬마을
아이들의 얼굴에 그쯤 두렵지 않는 비바람을 나만이
내 넋에 가둬 넣고 있었다.
비탈진 오르막, 자꾸 미끄러지는 풀밭을 간신히 올라 숨을 헐떡이며
낮은 멧동의 처량한 옷 매무새를 지친 호흡으로 위로하며 오르막 길 끝에
올라 장승처럼 서 있는 키다리 소나무를 막 지나려는 순간,
이건 또 어디에서 쏟아저 들어온 바람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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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그 무서운 바람과 비보다 강했다.
이렇게 그들에게서 살아남아
그때에 비하면 콧등을 간질 거리며 지나가는 작은 빗줄기 앞에 나서는
아까운 딸 아이를 지켜보며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엄마의 끝없는 걱정을 뒤로한체
악몽이였지만, 그것마저 행복하게 다가오는 현실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