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이[1]
애린네 다락방은 내 어린시절 너무 많은 꿈들로 가득차 있었다.
애린네 엄마방에서 좁은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작은 아치형문이
하나 있는데,그 문에 들어서면 미색 책꽂이에 가지런히 꽃힌 수많은 책들...
내가 애린이네에 놀러가면 그 책들은 나를보며 항상 반겼다.
내 작은 손은 그 많은 책들을 가만히 두지 않아 책들은 나를 아주 익숙한
자세로 내 정신에 날개를 달아주곤 했다.
내가 그 다락방에서 만난 맨 처음 친구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다.
하이디가 디테이모를 따라 할아버지 만나로 갈때 나도 하이디를 따라
알프스 산자락을 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들꽃과 양치기 소년,알프스산 꼭대기에 하얗게 쌓인 눈...
책을 펼치면 난 알프스 산을 동경하다 하이디가 되고 만다.
다락방 한쪽엔 작은 유리창이 하나 있는데 그 창문을 통해 내려다 보면
작은 선창가에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넘실대는 물결따라 춤을추고
좀 더 멀리엔 파도막이 긴 방파제가 편한 자세로 누어 갈매기들이
가끔 쉴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곤 했다.
방파제 끝엔 하얀 칠을한 등대가 밤이면 우주의 별 하나가 내려와
앉아 항상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 했다.
저 멀리 푸른 수평선은 꼭 하늘하고 이어져 있는것 처럼 보인다.
가끔 지나는 흰 구름은 바다속에 조각섬이 되어 떠 다니곤 했다.
그 바다를 보며 난 맘껏 내 마음을 그려놓고...어느날 들이닥친
폭풍우에 내 환상은 마침표를 찍고 난 또다시 애린네 책속의 주인공이 된다.
애린네 집 뜰엔 애린이 엄마가 봄부터 가꾸어온 국화가 울타리처럼
커져가고 작은 봉오리가 피기 시작하면 국화향은 집가 조금 떨어진
선창가에도 사람의 후각을 자극 시킨다.
난 처음엔 국화향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한약처럼 씁쓰름한 향은 어느날 국화가 활짝피어 꽃동산을 이룰때
그 쓴 향은 더이상 내게 쓰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른쪽 가엔 작은 항아리들이 키제기를 하고 장독대 아래는 아직
덜 시들은 색색의 채송화가 아침 이슬을 먹고 눈을 비빈다.
그의 엄마는 항상 부지런해서 잠시라도 쉬질 않는다.
애린이 엄마는 아주 오래전 제주도에서 동네 친척을 따라 이곳까지
물질을 하러온 해녀다.
동그란 눈과 한쪽 볼엔 보조개가 있고 목선이 갸냘퍼 보이는 그 엄마는
처녀시절 동네 총각들의 가슴을 많이 울렸다 한다.
어느날 갑자가 애린이가 태어나고 마을에 작은 소동이 벌어진 후론
더이상 총각들의 가슴은 타질 않았다.
애린이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른다. 다만 가끔 어디에선가
애린이 엄마에게 하얀 봉투에 깔끔한 글씨가 쓰여진 편지가 올 뿐 이다.
난 애린이 아버지가 같이 살지 않는다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린이는 엄마와 단둘이 ,그저 평범한 가족의 일상처럼 무덤덤 했다.
애린이 엄마는 애린이에 대한 집착과 구속이 아주 심했다.
그 애가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도 아주 큰 마음 아니면 안되었다.
하다못해 매일 같이 놀아준 나에게도 마찬 가지다.
그 엄마는 그 집 울타리 안에서 애린이와 놀기를 항상 바랬다.
내가 놀러가면 맛있는 간식을 만들고 심심지 않게 노래도 틀어준다.
애린이는 그런 엄마를 내가 놀랠만큼 잘 따르지만 가끔 애린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쪼그려 앉아 우는걸 나는 아무말도 못한체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