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이종희

산문·애린이 3화

애린이[3]

그날밤 잠을자다 빗소리에 깨어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모르는 애린아빠의 모습과 부러움에 찬 애린이 다락방과

애린이 엄마애기와.........

아침이 되고 애린이는 학교가자며 우리집에 들렀다.

난 부시시한 눈으로 애린이 얼굴을 보았지만 애린이는 여느때와 똑같이

단정하게 빗은 머리에 분홍색 리본이 달린 끈을 양쪽으로 묶고는 빨간색

책가방을 매고 밝게 웃고 있었다.

난 후다닥 세수만 하고 대충 머리를 빗고 책가방을 들고 나왔다.

"영희야!밥먹고 가야지"

밭일을 마치고 방금 돌아오신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렀지만

이미 시간은 지금나가지 않으면 지각하고 말것같아 대꾸도 안하고

난 애린이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세벽마다 엄마는 밥상을 차려놓고 밭에 가시고 난 차려진 밥상을 혼자

먹어야 했다.내 위 오빠가 있었지만 오빠는 객지에서 혼자 공부를하고

아버지는 몇일째 먼바다에 나가셔서 집은 더 텅 비어 있었다.

등교길은 작은 오솔길이 있고 언덕을 오르면 길 옆엔 큰 밭과 밭 가엔 낮은 돌담이 쌓여 있다.

조금 더 내려오면 크고 작은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우리가 지날때 마다 솔잎을 흔들어 준다.

소나무 숲 길을 지나면 바다가 푸른빛 물결로 눈인사 한다.

가끔 난 길만 보고 걷는 까닭에 학교길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쩌다 길가에 들꽃을 보고 이길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다.

"애린아, 어제 잘 잤어?"

"응, 왜?'

"난 어제 네가 한 얘기 때문에 잠이 잘 안왔거든"

"왜?"

"난 사실 너의 아빠에 대해 한번도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어.그런데

어제 네 얘기에 조금 놀라기도 하고...너도 아빠가 있구나...하는

갑작스런 생각도 들고...."

"히히히.겨우 그거야? 난 또 뭐라고...야!난 너한테 얘기는 안했지만

난 별로 아빠를 안 좋아해. 엄마를 버렸다는 것도 있지만 아무튼 ..."

"무슨 사정이 있지 않을까?"

"사정? 무슨사정......에잇 그랬다고 해 두지 뭐"

애린이는 귀찮다는 듯 신경질을 내며

"야, 이러다 늦겠다. 빨리 가자"

그날 난 수업 시간에도 애린이 아빠에게 정신이 팔려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길에

애린이는 오늘은 좀 놀다 가자며 바닷가 자갈밭에 앉아 하얗게 탈색된

소라 껍질을 만지작 거리다가 바다만 한 없이 보고 있었다.

"애린아,엄마한테 혼나면 어쩔려고..."

난 애린이 엄마를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은근히 마음이 불안했다.

"오늘 물질 가는 날이야. 지금 집에 안 계셔...이런 날이라도 실컷 놀다

갈려고 하면 이런날은 놀게 생각이 안나 그치?"

"우리 그러면 들꽃 꺾으로 갈래? 저 위로 가면 참 많아 들국화도 있고

들국화 비슷한 향이 나는데 하얀색에 꼭 해바라기 같아 가볼래?"

"그래? 여기서 멀어?"

"그렇게 멀진 않아...가보면 알거야"

우리는 가방을 맨체 산길 옆으로 가는 들을 걸었다.

내 예상대로 들꽃은 너무도 예쁘게 하늘을 보고 있었다.

우린 무슨 꽃인지도 모르고 꺾다가 벌에 쏘일 뻔 했지만 운좋게

피할수 있었다.

낮게 쌓인 돌 무덤을 보며

"이건 애기 무덤이래...처음엔 이 무덤을 지나갈때 얼마나 무섭고

소름끼쳤는지 몰라 그래서 지나갈때 마다 막 달아나면 뒤에서

누군가가 꼭 끌어당길것 같아 앞만 보고 달렸지...

그런데 하도 많이 지나다 보닌까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아"

"어린나이에 죽는다는건 참 슬픈 일이야 그치?"

"그래...우린 참 다행이지? 이렇게 살아서 이런곳도 와보고..."

"우리아빠가 지난번에 만났을때 나 데려 가겠데..서울에서 공부 시키겠다고..

근데 난 안 갈거야. 너랑 헤어지는 것도 싫고,이곳이 좋아.

다시 태어나도 이곳에서 살고 싶어"

"나도 그래....너랑 같이 여기서 살수 있다면..."

난 노란색 들국화를 짧게 꺾어 애린이 귀 옆에 살짝 끼워 주었다.

애린인 좋아라 웃으면서 나에게도 해주겠다고 했지만 난 머리가 짧아

안 어울릴것 같다며 다음에 머리가 길면 그때 끼워 달라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우린 꺾은 들꽃을 한아름씩 안고는 산길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애린이 다락방 화병에 꽂혀있는 들꽃을 보며 우린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난 언제나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애린이에게 약간 과장을 해서 얘기를

해주고 애린이는 그런 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기울려 줬다.

애린이는 그렇게 해주길 내가 귀찮을 정도로 졸라데기도 했다.